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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편하면 세상이 아프다

어느덧,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계절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낭만과는 다른 물리적 공간 속에 또 다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쯤 중간고사 성적처리와 교원평가, 공개수업으로 학교는 바쁠 것이고, 그러건 말건 또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사는 교사도 있을 것이다. 연간 계획에 의해 항상 해왔던 일들의 반복이지만, 학교는 교육이라는 낯선 수레바퀴를 움직인다.

바라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이 푸른 하늘, 그동안 간직해 온 색채를 마음껏 발산하는 자연. 산과 들은 이렇게 장엄하게 스스로를 완성하는데 교육 현장은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아이들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교무실에 별반 인사도 없이 출근해 책상에 앉는 선생들. 그들의 일과는 컴퓨팅으로 시작한다. 모든 수기 장부가 업무포털과 나이스로 대체돼 편해지면서 알게 모르게 프로그램에 종속돼 우리는 노트북을 끼고 산다. 각종 공문을 화면에서 클릭하면서 처리해야만 한다. 일일출결에서부터 성적처리, 부서 업무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옛날이 좋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처럼 긴박하지 않았다. 파놉티콘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인 체제였다. 논의가 필요하면 교사와 교사가 만났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만날 필요도 없다. 그냥 전달 사항을 메신저를 통해 툭 날리면 된다. 더러 응답이 없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다.

물론 선생이 전혀 안 만난다는 뜻이 아니다. 편한 사람들끼리 만난다. 술 좋아하는 사람, 운동 좋아하는 사람, 취미가 같은 사람…. 그러나 정작 교육활동에 필요한 만남은 적다. 과별 협의회다 무슨 위원회다 하여 만남도 있지만 형식적이다.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겠다는, 어찌 보면 ‘내 편할 대로’ 살아가는 직장이 된 듯하다. 시간이 갈수록 학교가 한낱 생활의 수단이 되어버린 듯한 현실. 그러니까 주어진 일만 끝나면 내 일은 거기까지란 듯, 언제부턴가 타산적인 사람들이 늘었다.

내게 맡겨진 소중한 ‘인격체’로 학생을 생각한다면, 교사가 수업과 업무처리를 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리라. 교사가 해야 할 정작 중요한 것은 인성지도에 있다. 교과 전문성과 아울러 아이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선행돼야 한다. 말로 타이르고 ‘꽃’으로 때려서라도 아이를 ‘바르고 아름답게’ 사는 길로 가게 해야 한다. 그러기까지는 고매한 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따뜻한 말씨, 단정한 옷차림, 미래를 설계해줄 수 있는 지혜 등, 교사의 인격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청소시간에는 함께 걸레질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학생들이 어떻게 식사하는지 둘러보아야 한다. 깔깔 웃으며 수다 떠는 선생이 아니라 운동장 벤치에서 아이의 고민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방치해 교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선생이 아니라 아이들을 바른 길로 가게 만드는 ‘소신’ 있는 선생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커녕 자기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생이 늘어간다. 자기 학급에 대한 조언도 싫어하고 업무 얘기도 싫어한다. 너는 너 나는 나,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눈치다. 선배교사에 대한 존중도 후배교사에 대한 사랑도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됐다. 물질 중심의 한랭전선이 내려와 선생마저도 푸름을 잃고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 거린다.

학생들을 위한 좋은 계획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조차 ‘일거리’가 될까봐 선뜻 나서지 않는 풍토. 교사가 편하면 학생들도 편하다. 그렇다고 미래가 편해질 것인가. 나는 간혹 뉴스에 나오는 고위 공직자의 파렴치한 행동이나 지성인들의 몰지각한 행위, 돈에 눈이 먼 막가파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저들의 선생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당신이 어떻게 했기에 ‘쭉정이’를 만들었는가 하고…. 선생이 편하면 세상이 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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