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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해라…”-학교에 ‘섬’이 있다

사람을 그리워 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 목숨이 사위어 간 적이 있는가. 나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1년 넘게 머물며 사람을 갈망해 본 적이 있다. 파도와 바람과 갈매기 울음이 전부인 바다. 밤이 되면 악몽처럼 사람이 그리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멀리서 어선의 통통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눈물이 났다. 물고기는 물고기끼리, 갈매기는 갈매기끼리 어울려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사람 냄새에 굶주린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젊은 시절, 끝없는 전라도 길을 여행하면서 사람을 그리워 해 본 적도 있다. 어두운 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산이 가로막고. 듣는 소쩍새 소리는 무섭다기보다 차라리 반가웠다. 정말이지 아무 집이나 숙식을 청하면 하룻밤을 재워 주었고, 초로의 집주인이 정갈한 밥상을 챙겨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만 터치해도 아무에게나 연락할 수 있다. 그토록 바라던 사람과의 어울림이 이루어졌건만 왜 허망함이 앞서는 것인가.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면 외롭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사람이 늘면 늘수록 역설적으로 외로움이 깊었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단어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은.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 대신 ‘서로 잡아먹으라’는 말에 길들여져 살고 있는 듯하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부류들도 돈과 권력과 명예에 중독되어 순수를 잊었다. 지극히 속물적인, 그리하여 김지하 시인이 ‘오적’을 다시 고쳐 써야할 판이다. 이민 간 친구의 말을 옮기면 한인회마저 예전 같지 않단다. 한국에서 건너온 사기꾼들이 동포를 등쳐먹는 바람에 서로 거리를 둔단다.

우리의 마지막 희망, 교직은 어떤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사는가. 아이들을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으며, 선생끼리 만나면 반가워 손부터 내미는가? 씁쓸한 웃음이 먼저 나온다. 교직도 어느새 속물적인 관료주의와 개인주의로 변질되어 ‘아니올시다’이다. 선생끼리 편이 갈리거나 소 닭 보듯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학생과에 대한 열정도 증발해 타클라마칸 사막이 되었다.

선생 상호간 배려하지 않고 더러는 견제하거나 무시하고 억압하는 관계. 어쩌면 교과부장관이나 교육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관리자의 경영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다. 학교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교장 되려고 몸부림했던 노력을 교장 되어서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부분 안일무사하거나 교사들에 군림하고자 하는 그들이다.

선생 역시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는다. 또 알아서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참신한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있어도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문화에 길들이려는 행태들. 관료들이 사용하는 ‘혁신’이란 단어도 더 이상 혁신이 아니다. 그리하여 교직에 청춘을 바치고자 들어온 선생에겐 하루가 지루하고 답답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육현장이 난장이 되어버렸다.

어떤 교장은 무능의 중심에 서있기도 한다. 그리하여 선생들이 복불복의 자유를 누린다. 학급을 멋대로 방치하고 집에서나 입는 차림을 하고 출근한다. 교무회의 시간에도 비스듬히 앉아 ‘카카오 톡’을 즐긴다. ‘너는 말해라. 나는 안 듣는다’이다. 교무실 책상도 너저분하게 해놓고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에 몰두한다. 그리고 집안에 사소한 일이라도 생기면 결근한다. 그러고도 초과수당이나 성과급 같은 사안이 발생하면 눈에 힘을 주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이 바보취급 당하는 현장.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하면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학교. 부단히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학생을 사람으로 만들려는 선생은 적다. 교사의 윤리, 부모의 윤리, 학생의 윤리가 실종되어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놀러오는 아이들 같다. 온갖 영상 매체에서 쏟아내는 오락과 연예에 중독되어 그런가.

나는 사람 사이에 살면 외롭지 않을 줄 알았다. 특히 선생 사이에 머물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섬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울증과 강박증에 고개 숙인 선생이 늘고 있는 현실. 이제 우리도 바닷가에 나가 고도(Godot)를 기다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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