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영동 산골의 범화초등교 3학년 어느 가을날 점심시간. 선생님께서 교탁에 놓고 나가신 바이올린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줄의 조정나사를 좌우로 돌려보았다. 그러자 바이올린 줄이 '뚝'하고 끊어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끝내고 나가시면서 "너희들 이 바이올린 절대 만지지 마라! 이 바이올린 줄이 얼만 줄 아냐? 황소 한 마리 값이야! 만지면 안 된다?!"고 엄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황소 한 마리? 큰일났구나! 우리 집에는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을 뿐인데…!' 일을 저지른 나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5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교실에는 잠시 긴장이 흘렀고 아이들의 시선은 번갈아 가며 나와 선생님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선생님께서는 바이올린을 보자마자 누가 그랬느냐고 물으셨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무거운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울면서 선생님께 용서를 빌었다. "선생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용서해 주세요, 선생님!" 하다가 아예 나는 종아리를 걷고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께서는 창문 쪽을 향해 잠시 눈을 감으시더니 뜻밖에도 "알았다. 내가 더 잘못했구나! 그걸 여기다 놓는 게 아니었는데…" 하시며 한숨을 지으셨다. 나는 차라리 종아리를 몇 대 맞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괜찮다. 내가 대전에 가서 새 줄로 갈아 끼면 된다. 이게 그렇게 만지고 싶었냐? 응? 야, 이 녀석아! 앞으로 너희들을 계속 가르칠 악기니까 만지지 말라고 그런 거야. 황소 한 마리 값은 아니야, 놀랬냐?"하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죄송한 마음은 한량 없었으나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라는 말씀에 다소 마음이 놓였다. 사실 나는 3학년이 될 때까지 만해도 학습부진아였다. 그런 나를 방과후까지 부족한 공부를 돌보아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가르쳐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던 김태영 선생님.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을 간절히 찾아뵙고 싶었다. 충북 충남 교육청에 문의도 하고 수소문도 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못난 제자의 만시지탄(晩時之歎)만 나올 뿐이다. 성명제 서울 삼정초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