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사서오경 중의 한 책인 ‘예기(禮記)’의 ‘학기편(學記篇)’을 보면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의 자세와 학문을 배우는 제자의 태도에 관해 깊이 있는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상적인 대목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夏)’와 ‘초(楚)’라는 두 가지 회초리를 학생들 앞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다(夏楚二物 收其威也). ‘하’는 싸리나무 회초리이고 ‘초’는 가시나무 회초리이다.
회초리를 두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스승과 제자 간에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해도 좋겠다.
스승으로서의 위엄과 사제 간의 질서가 무너진다면 교육이 처음부터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언론과 방송 매체들은 교권이 무너진 학교 상황들을 주로 다루었다. 학부모에게 멱살이 잡히는 교사, 반항하는 학생에게 모욕적인 욕을 듣는 교사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만큼 교권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선현들은 교실에 회초리를 두어 스승의 위엄을 세우라고 했는데 회초리가 사라짐으로써 스승의 위엄도 무너지고 말았다.
회초리가 사라진 것은 물론 체벌금지 규정 때문이다. 지금도 교실에서 학생들을 몇 대 때리는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벌금지 규정 위반으로 고발될 위험성이 있기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회초리를 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체벌금지 규정이 생긴 것도 교사들이 감정적으로 학생들을 때리는 경우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의 위엄을 세워주는 회초리를 대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체벌금지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한 회초리를 대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회초리를 잃어버린 교사들은 말로써 회초리를 대용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말이 많아지고 거칠어진다.
어느 학부모가 시험 감독을 나갔는데 학생들이 떠들고 어수선하여 당황해 하고 있을 때 교사가 나타나 거의 쌍욕에 가까운 말로 제압을 하자 학생들이 그제야 자리를 잡고 조용해지더란다. 그 학부모는 교사의 거친 말투에 충격을 받을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교사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거친 말투로 학생들을 제압하려고 했을까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언어폭력도 엄연히 체벌의 일종으로 체벌금지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농후하다.
이전의 스승들은 회초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많이 하거나 거칠게 할 필요가 없었다. 말썽을 피우는 학생을 불러내어 회초리를 들고 조용히, 그러면서 엄숙한 어조로 ‘손바닥 내!’ 하면 그만이었다.
사람이 말이 많아지면 자연히 권위와 위엄이 떨어지고 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회초리를 대용하기 위해 교사들이 말이 많아지다 보니 권위와 위엄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교권의 위기를 맞고 있는 작금의 학교 상황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스승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하(夏)’와 ‘초(楚)’의 회초리를 두라는 선현의 충고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