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는 매월 교육정책 현안을 주제로 공동기획 좌담회를 개최합니다. 이 공동기획 좌담회는 `현장교원이 만들어 가는 교육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교육정책에 현장성을 가미하고 교육의 주체인 교원들이 교육정책에서 소외되는 잘못된 풍토를 개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좌담회 내용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 분은 본지 홈페이지(www.hangyo.com) 또는 교총 홈페이지(www.kfta.or.kr)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참석자> ▲남광우 수원 수성고 교사 ▲이만기 인천 문일여고 교사 ▲임근수 충북 청주고 교사 ▲정석성 강원 홍천여고 교사 ▲황인표 서울 보성고 교사 ▲사회 조흥순 교육정책연구소장 직무대행
◇조흥순=2002학년도 대학입시 결과부터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때보다 혼란이 심했다고 보는데요. ◇이만기=혼란은 정부가 주도했다고 봐야겠지요. 아무 대책없이 총점누적분포표를 제시하지 않아 사설입시학원에 농락당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향 지원 추세가 두드러졌고 지방대학을 기피하고 전문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입시의 축이 전문대학으로 기울어진 것이 특징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정석성=공부가 아니더라도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특기적성, 내신, 수능 모두를 잘 해야 합니다. 좋은 대학일수록 이런 만능인의 요구는 더욱 심하구요. 특기·적성교육을 입시로 몰고 가면 진정한 특기적성 교육이 되지 못합니다. 전국단위 대회, 도 대회, 중앙 일간지 주최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만 인정하므로 특기적성을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한 결과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사설학원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할 정도니까요. 성적 이외의 다른 요소 반영은 지방 학생들에게 불리합니다.
◇임근수=2002년 입시를 통한 핵심 정책은 학벌타파, 한 줄 세우기에서 여러 줄 세우기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정시모집에서는 총점위주의 선발을 지양하고 수시모집에서는 다양한 전형을 실시해보자는 교육부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대다수 수험생들의 혼란을 빚었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입시 관련 정책당국은 수시모집, 정시모집에서 어떻게 해야 고교 교육이 정상화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조흥순=수시 모집 제도는 어떻습니까?
◇이만기=수시 모집은 가진 자를 위한 제도라고 봅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 나가고, 토익 토플시험, 경시대회 모두 참가하고 추천서가 꽉 차는 학생이라야 명문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거주한 학생의 경우 수능 점수는 거의 중하위권이지만 외국어 특기로 여기저기 다 붙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아이들은 자괴감을 느낍니다. 1차 수시모집 발표 후 교실은 축하보다는 반목과 질시하는 분위기가 사실입니다.
◇남광우=수시 모집 1학기는 폐지돼야 합니다. 일선 학교의 부담이 많고 합격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수시 합격자는 대학에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일찍 뽑기만 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정석성=수시모집 지원자의 추천서와 학업계획서 작성에 1명당 3일에서 1주일씩 걸립니다. 대학에서 알아서 뽑아야지 고교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됩니다.
◇황인표=입학전형의 다양화라는 정책에 동조한다면 수시모집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다만 전형방법상의 보완이 필요하겠지요. 수능시험의 일관성 부재는 정말 문제입니다. 수능 도입이후 쉽게 출제하면서 자격시험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해 수능은 여론몰이에 밀려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는데 수능이 통과 관문으로 되어 예전의 예비고사 형식으로 가야 합니다. 선발의 다양화는 대학이 맡아야 고교 부담이 줄어든다고 봅니다.
◇조흥순=수능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인데 교총은 가급적 수능은 자격제로 되어야 한다고 보고, 선발은 대학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선발권도 사실은 몇몇 주요 대학이 장악한 것입니다. 다양한 입학제도의 운영으로 학교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그것이 공교육 불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이 자율. 보충학습을 요구하지만 정부에서는 불허 방침을 갖고 있으니 결국 학교 무용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황인표=수시모집은 큰 흐름에서 찬성하지만 부분적으로 문제점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학교 정상화를 위해 계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찬성 이유는 대학 선발권의 다양화 측면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에서 일찍 선발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되겠지요. 지금 당장은 문제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가 수능에 매여있지 않으려면 수시모집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흥순=제7차 교육과정 전망과 이에 따른 2005 수능 개편안에 대해 짚어볼까요.
◇이만기=준비는 하고 있지만 실제 움직임은 없습니다.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7차 교육과정이 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에 더 유리하다고 봅니다. 드러내놓고 입시 준비를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선택과목별 반편성은 자연스럽게 우열반 편성이 이루어지고 있고 수능에 적용되는 과목, 비과목을 잘 섞어서 선택과목 시간표를 정한 후 비과목 시간에 수능과목을 가르치는 방법도 동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광우=교실여건도 큰 문제입니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을 위해 가건물로 교실을 지었는데 안전사고 위험이 큽니다. 100m 코스가 안되는 운동장을 또 잘라서 교실을 짓고 있는 형편입니다. 학교가 황폐화되고 있는 거지요. 기간제 교사로 교사 수급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수준별 수업을 운영하면 우수반에 들어가려고 학원을 다니게 되고 결국 사교육 부담을 가중시킬 겁니다.
◇조흥순=수능 개편안은 매우 졸속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청회 한번 거친 후 최종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공통과정이 평가영역에서 제외되었는데 공통과정 교육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리고 교과 편중 현상, 교육과정의 입시 종속 현상, 그와 관련된 학교 운영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임근수=수능 개편안은 학교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은 결과겠지요. 공청회에서 나온 방안들을 절묘하게 조합한 타협안으로 철학이 없습니다. 이 안에 따르면 진로선택이 일찍 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학생들은 토목공학과에서 건축공학과로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의대에서 법대로 진로를 바꾸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석성=학생들이 배우지 못한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소수 학생들이 선택한 과목을 개설할 수 없고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가 선택한 과목으로 바꾸게 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자율권 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소규모 학교에서는 아예 시행이 불가능합니다. 순회교사제를 활용할 수 있지만 소규모 학교는 여러 명의 순회교사가 와야 하고, 수업 후 학생 지도의 책임 한계가 생깁니다. 교육은 교사, 학생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만 초점을 두어선 안 되지요.
◇이만기=직업탐구영역 신설로 실업고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모두 입시교육을 할 것입니다. 내신으로 대학가는데 수능으로는 경쟁하기 어렵거든요. 현재 학생들은 성적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있는데 일부과목만 선택해 응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과목을 응시해 잘 나온 것으로 입학전형에 제출할 것입니다. 결국 모든 영역을 준비하는 거지요. 고교 1학년의 특기적성교육은 모두 국·영·수 공부에만 충당될 것이고 2.3 학년에서 선택과목 일부를 골라서 하고, 내신도 일부 과목만 반영하니 좋은 점수 나오는 것만 고르게 되겠지요. 대안으로 전 영역에서 골고루 필수 선택, 심화선택을 두어 특정학과는 특정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전 예고됐으면 합니다. 내신성적은 전과목 석차 백분율 반영, 내신 반영 비율 의무화 등을 규정해야 합니다.
◇조흥순=기본적으로 정부의 수능개편안이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의 최소화를 위해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상의 보완해야 할 과제 운영상에 필요한 보완 방안을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황인표=대학원과정에서 진로를 선택하는 나라들도 많은데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진로 선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빨리 빨리 선택하게 해서 원하는 공부만 한다는 것은 반드시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능은 고교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았으면 풀 수 있도록 교과서 내에서 시험을 출제해야 사교육 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를 조금 더 어렵게 만들더라도 그 안에서 출제해야 합니다. 7차에서 교과 내용을 줄이고 학습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은 세계적으로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강조하는 추세에 배치된다고 봅니다.
◇임근수=이론상 수능의 비중이 정시모집 70% 수시모집 30%를 차지하는데 수능 위주의 입시 제도가 존재하는 한 개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전체 대학의 약 85%가 수능 점수의 반영 비율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고교 등급제는 특히 시골 학생들에겐 이유없이 차별을 가하는 것입니다. 고교 등급제보다는 차라리 본고사, 지필시험이 타당합니다. 지필고사를 볼 수 있는 자율권을 대학에 주어야 합니다.
◇정석성=대학입시를 시행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면 되는데 제도를 너무 바꿔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학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증거가 뚜렷합니다. 입시제도 바꿀 때 교원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임=교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추천서 쓰기 힘드니까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 논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문제가 되면 교사들이 나서야 합니다.
◇이만기=대학입시만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학사제도 자체를 개편해야 합니다. 수능시험일을 11월 5일로 본다면 그 이전에 고교 학사를 종료하고, 11월 1일∼2월 말까지를 입학 전형 기간으로 하면 대학과 고교 교사가 부담을 느낄 이유도 없습니다. 수시 모집은 현재와 거꾸로 하면 됩니다. 면접이 합법적인 편견의 장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남광우=전 과목 내신 반영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체육을 못하는 아이가 사회생활, 학문 활동에 문제가 있습니까. 특정 과목 하나 때문에 대학 입시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면접 날짜가 겹치지 않도록 대학간 조정이 필요하고 면접 장소도 지방에서 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