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가을빛이 내린 운동장을 바라보는데 ‘띠링’ 스쿨 메신저 알림벨이 울린다. 보건선생님으로부터 온 메시지이다.
“선생님, 우선관심군 학생인 K는 잘 지내고 있나요? 특이사항 있으면 저에게도 연락주세요.”
K군은 ADHD가 의심돼 심층사정평가가 필요한 학생이지만 학부모님이 거부 의사를 밝혀 담임인 내가 집중 관찰하며 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일지를 꺼내 작성하는데 문득 9년 전 ADHD 아이를 처음 담임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교육경력 8년차, 3학년을 맡게 됐다. 해마다 그렇듯 설레는 첫 만남을 기대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10살의 어린 천사들이 두 눈을 말똥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이, 한 아이 일일이 눈을 맞추며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자기 소개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안녕하세요?”
새 학년 첫날부터 지각인데도 미안한 기색도 전혀 없이 교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인사하며 교실 문을 들어서는 아이. 민욱이었다. 깜짝 놀라 토끼눈이 된 나를 보며 우리 반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쟤, 원래 저래요. 2학년 때도 맨날 그랬어요.”
‘음, 네가 바로 그 유명한 민욱이구나’
진작부터 민욱이에 대한 소문을 들어온 터라 ‘으이구, 골칫덩어리!’ 라는 문구가 먼저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박히는 순간이었다.
“안녕? 어서와! 만나서 반가워. 늦었구나. 여기 앉도록 하렴.”
민욱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 안에 가득 피어났던 기쁨꽃이 갑자기 꽃샘추위에 시들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신없이 바쁜 3월과 함께 민욱이의 활약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욱이는 무슨 일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했다. 친구에 대한 배려도, 단체생활에 대한 질서도 전혀 없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무조건 떼를 쓰기 시작했다. 3학년에 맞지 않는 행동이 반복되고 교사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막무가내인 행동들로 인해 반 아이들의 불평불만이 쏟아졌다. 8년 교육경력의 힘을 빌어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학단원평가 시간, 갑자기 민욱이가 짝의 시험지와 오답공책을 확 찢어버리는 사건이 생겼다. 짝이 자기 시험점수를 틀리게 적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학부모 상담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막상 상담을 하려고 하니 여러 가지 생각들로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부모님이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해주실까? 아이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계실까? 집에서는 괜찮은데 괜히 함부로 말했다가 역반응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어머님이 학교에 방문을 하시고 그동안 수없이 했던 고민을 어렵게 꺼냈다. 3월부터 있었던 민욱이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하자 어머니는 큰 반응 없이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들께서도 병원에 가보란 말을 했다고 하셨다. 민욱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어머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제는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민욱이의 아버지는 주관이 너무 뚜렷해서 다른 사람의 말에 절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완고한 사람이었다.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선생님들을 몰상식한 인간으로 취급하면서 어릴 때는 다 그렇게 크는 거라며 헛소리 하지 말라고 병원 치료를 강력하게 거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 다음에 상담을 오실 때는 아버님도 함께 오시면 좋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민욱이를 위해서는 상담이 계속 필요하고 특히 아버님과의 상담이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민욱이 아버님께 내가 직접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건 더 안 된다고 펄펄 뛰셨다. 자신이 최대한 남편을 설득하고 민욱이를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보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돌아가셨다.
상담을 하는 동안 어머님이라도 호의적인 상태라 마음이 놓였다. 뭔가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민욱이를 위해 무엇인가 해 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하게 감기를 앓느라 도저히 출근할 상황이 되지 못해 병가를 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데 교실 문 앞에 누군가가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민욱이었다.
“민욱아, 여기서 뭐하니?” 아이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
“선생님! 어제 왜 안 오셨어요?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그동안 민욱이로 인해 힘들었던 많은 순간들이 따스한 봄 햇살에 눈이 녹아내리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정말? 선생님도 민욱이가 너무 보고 싶었단다. 선생님을 걱정했구나. 고마워, 정말 고마워.”
'보고 싶었다'는 민욱이의 그 말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 말로 인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졌다. 새 학년이 시작된 날부터 혼나기 시작해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더 많이 들었을 텐데 그 누구보다 나를 제일 많이 걱정해주는 이 아이의 마음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말도 잠시 조절이 안 되는 아이의 행동은 또다시 반복됐다.
제발 오늘은 아무 일없이 무사히 넘어가길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영어시간이었다. 주사위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책상과 의자가 뒤에서부터 마구 넘어지면서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아아~~~~~~~~ 아!!!!”
“무슨 일이예요?”
“민욱이가 책상을 발로 찼어요.”
넘어진 책상과 의자에 등이 부딪친 아이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었다. 그 순간, 민욱이가 “니가 주사위 조작했잖아?” 하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붙잡으려고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학교 밖으로 뛰어 나가 사라져 버렸다. 옆 반 선생님께 우리 반을 부탁하고 민욱이를 찾으러 나갔다. 집에 전화를 드리고 아이를 찾아 큰 길 쪽으로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다. 1시간을 정신없이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데 민욱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차를 몰고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 아이의 집은 학교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한 꽃집이었다. 가게 안쪽 작은 방으로 들어가니 아버님이 담배를 피시며 인사하는 나를 본 척 만 척하며 다짜고짜 “낼부터 우리 아는 학교에 안 보낼 테니 그리 아이소.” 라며 집이 떠나갈 듯 소리치셨다.
처음 겪는 상황에, 지난 번 상담 때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여러 가지 말들이 생각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어쩌면 어머니가 그 아버지께 하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말들까지 모두 포함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생이 내보다 우리 아를 더 잘 아는가? 평생 봐온 내보다 우리 아를 더 잘 아는 것같이 이야기하니 참 어이가 없구만.”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의 상태와 치료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러자 아버님은 어디어디 소아정신과 원장이 친구이고, 형님이고…. 이러시면서 나보다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돌아가라며 언성을 높이셨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
“아버님, 민욱이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정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는지. 저는 민욱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교사로서 민욱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사랑으로 지도한 것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그건 민욱이가 더 잘 알겁니다. 제가 어떻게 아버님보다 이 아이를 잘 알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이 아이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민욱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갑자기 민욱이가 방에 들어오더니 말했다. “아빠, 우리 선생님한테 와 이라노?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해주시는데……”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민욱이 아버지께서 조용히 담뱃불을 끄시며 눈을 감으시더니 “선생님, 그만 가 보이소.”라고 말하셨다.
나도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민욱이에게 내일 꼭 보자고 말한 후 돌아왔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그 날의 일들이 꼭 악몽을 꾼 것처럼 힘든 하루였다.
다음날, 민욱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믿었다. 그 아이가 꼭 학교에 오리라는 것을. 병가를 낸 다음 날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던 민욱이의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틀 후 민욱이는 학교로 왔다. 부모님께서는 나를 믿고 선생님의 말씀에 적극 따르겠다며 함께 노력하겠다는 말씀까지 주셨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는 나의 신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낯설게 느껴졌던 ADHD. 그 이후 민욱이는 놀이와 심리 치료를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잉행동도 점점 줄어들었고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민욱이 덕분에 ADHD와 상담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다. 그 후 정신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연수를 받으며 학생지도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민욱이가 나를 선생님으로 인정하고 믿어주었다는 것이다. 민욱이가 꼭 변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민욱이를 바꾸어야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민욱이가 변할 수 있다고 믿은 그 믿음이 인내를 만들어 주었고, 그 마음과 진심이 아버님의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ADHD 민욱이는 그 후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을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선물해주었다.
2013년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올 해 다시 만나게 된 ADHD가 의심되는 우리반 K를 볼 때마다 민욱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 때의 경험이 큰 힘이 돼 이제는 ADHD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에겐 ‘사랑과 믿음’이라는 큰 치료제가 있으니까.
요즘 세태를 보면 교실 붕괴, 교권 부재 등의 부정적인 말들과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사이의 사소한 오해로 빚어지는 심각한 갈등들이 학교와 교실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의 진정한 소통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사랑’만이 소통의 최고 열쇠라는 것을, ‘사랑과 진심’이 닫혀진 마음과 무너진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담아본다.
가을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문득문득 그 때 민욱이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부모보다 내 아이를 더 잘 아나?’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사실은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었다. ‘네, 부모님보다 아이를 더 잘 압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나도 교육 경력 17년차, 사계절로 비추어보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거나 마찬가지다. 이젠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선생다운 선생이 되어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일은 찬바람을 맞으며 들어선 우리 반 아이들이 이 교실에서 가족 같은 따뜻함을, 엄마 같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많이 보듬어주어야겠다.
나로 인해 더 행복해지는 아이들, 그들이 내 나라 대한민국의 희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