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화 이후 첫 임용된 수석교사의 재임용 심사과정에서 시·도교육청의 자의적이고 과도한 ‘역량평가’로 무더기 탈락하면서 수석교사 폐지 수순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4년간의 업적평가와 연수실적평가 결과는 무용지물이 된 채, 평가 영역이 중복된 일회성 면접이나 현장평가가 당락을 결정하고 있어서다.
지난 16일 광주시교육청은 재심사를 통해 중등 수석교사 14명 중 9명을 탈락시켰다. 시교육청은 1차 전형으로 업적평가 및 연수실적평가(400점), 2차로 심층면접을 통한 역량평가(100점)를 실시하며 면접결과 80점 미만은 탈락 처리했다.
이에 대해 수석교사제를 사실상 고사시키기 위해 역량평가가 부당하게 적용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수석교사들은 “역량평가 신설 자체가 교육부령으로 정한 ‘수석교사의 재심사에 관한 규칙’에서 제시된 재심사 기준인 ‘그 밖에 부적격한 사유의 유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재량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선발 공문에서나 4년간의 운영과정 중에는 ‘업적평가 및 연수실적평가 점수를 합산해 280점 이상이 돼야 한다’거나 건강상태, 비위 관련 여부 정도의 기준만 제시하다가 재심사 기간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역량평가를 끼워 넣은 졸속행정이라는 주장이다.
정선기 광주중등수석교사회장은 “매년 업적보고서를 내고 평가받았던 4년의 과정은 무시한 채 30분 이내로 실시한 면접 역량이 재임용을 결정짓는 것은 부당하다. 역량평가에서 보는 동료교사 지원 역량이나 학생교육역량 등은 1차 전형에서도 평가된 사항인데 중복된다”고 밝혔다. 또 “시교육청이 컨설팅 우수사례로 선정한 수석교사가 탈락된 건 어떻게 봐야 하냐”며 “수석교사제를 폐지하려는 수순”이라고 꼬집었다.
2012년 출범 당시 전국 총 1122명의 수석교사가 선발됐지만 내년에는 단지 32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번 재심사 결과가 ‘폐지 음모론’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재심사 대상인 중등수석 14명 전원이 당락을 떠나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또 현재 활동 중인 중등수석 28명 모두가 수석교사 포기원 제출을 고려하고 있다.
역량평가로 인한 갈등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경남에서는 수업공개, 동료교사와 학교 관리자 면담 등을 실시하는 현장방문평가를 시행했다. 퇴직 교장 2명과 현직교감이나 장학사 1명이 조를 이뤄 수업을 평가하고 교사를 무작위로 뽑아 면담했다. 도교육청은 수석교사들과 소통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현장방문 평가를 실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권순애 경남초등수석교사회장은 “신규 선발을 할 때보다도 강화된 역량평가를 실시해 재심사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라고 짚었다. 더불어 “수업 중인 교사를 비밀실에 불러 면담하며 마치 수석교사가 문제가 있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북지역도 온라인 동료교원 평가(50점)와 현장방문 평가(50점)를 통해 역량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온라인 동료평가가 있는데 또다시 학교관리자·동료 교사 면담으로 동료교사 지원 실적과 수석교사로서의 자세를 평가하는 것은 중복 평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단위 학교 구성원과의 갈등을 수석교사의 무능으로만 몰아가는 것도 부당하다는 의견이다.
A수석교사는 “업적평가서 제출에 대해 10월 20일에 보낸 공문에는 2차 평가에 대해 한마디도 없다가 12월 1일 공문에서야 14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혀 충분히 예고된 사항이 아니었다”며 “이미 검증받은 수석교사들에 대해 새로 뽑듯이 평가하는 것은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교육청들은 교육부의 재심사 기본계획에 시도 자율로 역량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석교사의 임용권은 교육감에 있기 때문에 재심사 방식에 대해서도 자율적으로 결정해 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용조 한국중등수석교사회장은 “수석교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전국의 재심사 결과를 파악하고 이의신청이나 교원소청심사 등을 통해 재심사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