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A고 장 모 교사는 정년을 2년 앞두고 명퇴를 하게 됐다. 지난해 명퇴 신청이 거부돼 ‘명퇴 재수’를 한 셈이다. 장 교사는 “내가 선택한 건데도 뭔가에 등 떠밀린 기분이다. 여전히 아쉬움이 크지만 더 이상 교사로서 존재감을 갖기가 어려워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에게 훈계는커녕 방해되지 않게 복도에 나가 있으라는 말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떤 교실은 수업시간인데도 돌아다니고 끼리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어 카페처럼 느껴질 정도다. 파마하고 화장해도 놔둬야 한다”며 “학교 현실은 모르는 분들이 학생 인권에만 신경을 쓰니 갈수록 수업방해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B초의 최 모 교사도 정년을 2년여 앞두고 명퇴했다. 출가를 앞둔 딸도 있고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주변에서는 조금만 더 참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나이 많은 초등 남자 평교사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반기지 않았다. 그는 “학부모들이 관리자가 되지 않은 나이든 남교사는 무능한 존재로 보는 것 같아 불편했다. 개학하자마자 담임을 바꿔달라는 전화까지 왔다. 그 뒤로도 수시로 학부모들이 시시콜콜한 불만 전화를 했다”며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정년을 채우려는 것이 오히려 학교를 난감하게 하고 개인 욕심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같이 교권이 무너진 교실에서 매년 명퇴로 고경력 교원들이 대거 유출되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까지 가세한 교권 침해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 교권보호위원회에 접수된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는 지난 2009년 11건에서 지난해에는 107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사건 488건 중 절반에 가까운 227건도 학부모에 의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교육감의 인사전횡을 견디지 못해 교직을 떠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경기 C중의 이 모 교사는 정년을 5년 남기고 명퇴를 택했다. 교장 중임을 마치고 도교육청 장학관, 지역교육청 과장이었던 그는 다른 교육감 후보를 지지했다며 일종의 괘씸죄에 걸려 원로교사로 학교 현장에 오게 됐다. 16년 동안 관리자로 있다가 다시 수업을 하려니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수업시수가 17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며 지난해에는 인근 학교 순회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국어 교사인 그에게 체육 교과를 담당토록 한 것이다.
그는 “선거운동을 했다며 억울하게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행정소송을 하면 무혐의 판결이 나올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득이 될 것이 없어 포기하며 참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전공과도 무관한 체육수업을 하라는데 더 이상은 학교에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올해 2월말 명퇴 교원은 전국적으로 3987명이다. 신청자는 5057명이나 된다. 연금 정국이 절정에 달한 지난해 2월 명퇴 신청자(1만 2537명)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수치다. 하지만 2월말 명퇴 신청자만도 2012년 3579명, 2013년 4202명, 2014년 5164명 등 4~5천명에 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건강 등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 교권 침해, 과중한 업무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시교육청 담당자는 “정년이 9년이나 남은 교사도 신청을 했다. 교사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명퇴자가 늘고 있다”며 “신청자가 많아 다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올 명퇴 수용률은 서울 63.3%, 경기 65.0% 등에 그쳤다. 이 때문에 ‘탈락’ 교원이 늘고 있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교원들은 명퇴 재수, 삼수에 도전하고 있다.
경기 D교사는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 매번 탈락해도 명퇴를 신청하고 있다”며 “이젠 학교에 다 알려져 동료들이 억지로 자리를 지키는 교사로 생각할까 바늘방석”이라고 토로했다. 떠나려는 교사가 늘면서 갈수록 정년을 채우는 교원이 줄고 있다. 올 2월 서울시 공립 중등 퇴직자 560명 중 정년 퇴직자는 83명으로 명퇴 477명의 5분의 1 수준이다.
명예퇴직이 ‘명예’스럽지 않다보니 남아 있는 교원들의 사기 저하와 고경력 교원의 공백으로 인한 교육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 E초 정 모 교사는 “나이가 많다는 학부모 불만을 듣기 싫어 떠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닐까 자괴감이 든다”며 “원로교사가 덜 활동적이고, 옛날 방식으로 가르칠 거라는 편견이 명퇴를 더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F고 황 모 교사는 “교사가 떠나려고 하는 교단에 희망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교직은 ‘짬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력이 많으면 도움이 된다.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후배 교사들에게 전수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명퇴로 인해 사장되는 부분이 아쉽다”며 “교사의 자긍심을 높이고 수업에 전념하게 하는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