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세월호 참사 2주기다. 노란 리본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무수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잔인한 4월이다.
참사 2주기, 다시 찾아온 고통
단원고는 지금도 희생자들의 교실 보존 문제로 유가족과 학교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한다. 참으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에 대해 무슨 해법이 있겠는가.
지금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해맑은 얼굴. 엄마의 선물을 사가지고 돌아오겠다는 아이들의 미소가 액자 속에서 빤히 웃고 있는데, 세월이 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억장이 무너진다.
차라리 내가 죽어 네가 살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게 우리의 심정일 것이다.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목숨은 너무 가엾고 혹독하고 두렵다.
침몰사건 이후 정부는 법적 책임자를 규명하지도 못한 채, 그저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내세우며 사후약방문의 매뉴얼 작성에 급급했다. 미봉책으로 학교의 단체 활동을 중지시키고 강도 높은 규정을 만들었다. 동시에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성하게 하고 교장을 책임자로 하는 서류적인 점검을 완료했다.
하지만 매뉴얼이 있다고 사고가 비켜가지는 않는다. 이익에만 눈멀어 규격미달의 자재와 눈속임으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이런 고질적 병폐가 척결될 리 없다. 정치권에서부터 중소 사업자에 이르기까지 탈세와 탈법으로 살아가는 한 우리 안전은 요원하기만 하다.
문어발식으로 하도급을 주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인력부족이란 명분으로 감독을 소홀히 하는 것도, 적당히 눈속임하는 업자들도 어쩌면 짜고 치는 범죄자들이다. 더욱이 매뉴얼을 시달했으니 교육청은 할 일 다 했다는 식도 구태의연하다.
병폐 여전한데 진정한 참회 언제쯤
또 하나,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추모 2주기를 정치적으로 연결해보려는 일부 진보 교육감도, 또 본질을 호도하여 ‘계기수업’을 하려는 교사들도 방법치고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교원은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학생을 선동해서는 안 된다’는 중립성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편향적인 자료로 특정 정당에 대해 분노부터 가르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계기수업이란, 말 그대로 공식적인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을 가르치는 수업을 말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불허 지시를 내렸음에도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강행하겠다니 일선 학교가 갈등만 겪지 않을까 우려된다.
같은 아픔의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치유해 가야 할까. 그것은 정확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 법 정의를 강경하게 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관행이 된 비리와 불법을 뿌리 뽑아 한민족의 견고한 윤리를 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내 탓이오’를 고백하며 진정 참회와 용서로 화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천국으로 수학여행 간 생명들에게 작은 속죄라도 될 것 아닌가. 리본꽃의 꽃말은 참회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