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없는 학교’로 유명한 독일 부퍼탈의 바멘 게잠트슐레(Gesamtschule·종합학교)가 2015년 독일에서 가장 명예로운 교육상인 ‘독일학교상’을 수상했다. 바멘 게잠트슐레는 20년 전부터 숙제를 폐지했고 대신 수업시간을 45분에서 65분으로 확대해 그 시간 내에 모든 학습을 마칠 수 있도록 했다.
숙제는 독일 제도권 교육에 도입된 이후 500년이란 세월동안 이어오면서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을 점유해 왔다. 그러나 독일에서 숙제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돼 왔다. 그런 와중에 바멘 게잠트슐레가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숙제 폐지론이 재조명 받고 있다.
독일의 많은 교육 연구기관이나 교육학자 등은 ‘숙제의 교육적 효과는 제로’라고 말할 정도다. 1904년 심리학자 에른스트 모이만은 ‘숙제는 학교 수업시간 내에 이뤄져야 할 교육’이라며 숙제의 불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후 1958년 교육학자 베른하르트 비트만은 뒤스부르크 소재 학교에서 4달 동안 두 과목에 대해 숙제를 내주지 않은 학급과 숙제를 내준 학급의 학습효과를 비교했다. 이 실험에서 두 학급 학생들의 학업 수준 향상에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비트만은 이 실험을 근거로 ‘숙제는 학생의 지식향상과 학습의 완성도를 증가시키는데 전혀 효과가 없는 제도’라며 숙제 폐지를 주장했다.
1980년대에는 숙제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학교 교사였던 힐마 슈벰머는 실험을 통해 숙제의 부작용을 증명해 보이며 숙제 폐지 운동을 이끌었으나 많은 교사와 학부모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슈벰머는 주어진 숙제를 마친 45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숙제가 가족 갈등의 원인만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방과 후 충분한 휴식과 가족을 위한 시간이 돼야 함에도 부모는 자녀에게 숙제를 하라며 학습에 대한 부담을 주게 되고 부모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학생과 교사의 관계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슈벰머는 또한 숙제는 사회적 불평등을 첨예화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숙제를 도와줄 수 있는 학력 수준이 높은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 간의 격차가 학생에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시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숙제 폐지 움직임은 부모들 스스로 숙제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감수하고라도 학교의 보조교사임을 자처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도 숙제의 불필요성에 대한 연구와 문제 제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사회학자인 유타 알멘딩어도 숙제가 사회적 불평등을 첨예화시키는 제도라며 숙제 폐지를 주장했다. 65%의 부모가 자녀의 숙제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숙제를 도와줄 수 있는 학업 능력이 있는 부모는 14%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숙제가 학생의 휴식권을 침해하고 방과 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교사 또한 숙제 검사에 귀중한 수업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학습 진도에 오히려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숙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숙제 폐지로 인한 학습량 부족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단위 학교 차원에서 숙제를 과감히 폐지한 경우는 있지만 여전히 독일 연방 차원에서 제도 개편이 진행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