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천으로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공명정대하게 심판하라는 뜻이다. 이를 교사에게 대입해 보면 교사는 모든 학생에게 편견 없이 대하라는 메시지다.
교사도 인간이기에 첫인상에서 호(好), 불호(不好)의 감정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큰 바위 얼굴이어야 한다.
미국의 오크(Oak) 학교는 하류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공립학교다. 이 학교에 이런 일화가 있다. 한 교장 선생님이 새 담임교사에게 등질집단인 두 학급을 배정하면서 한 학급은 학부모의 지위가 높고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집단(A반)이라 말하고 다른 학급(B)은 정반대라고 했다.
그 후 학년말에 성취도를 조사해 보니 A반 학력이 훨씬 높게 나왔다. 이는 교사가 무의식적으로 A반 학생에 더 높은 기대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결과가 아닌가 해석된다. 교사는 학생 교육에 있어 그 어떤 선입견을 갖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시사이자 교훈이다.
70년대 첫 발령지였던 초등교에서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학습 부진학생에 대해 ‘나머지 공부’를 시켰는데 이는 학생들이 지독히 싫어하는 인격 체벌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나머지 공부’라 하지 않고 담임교사의 환경미화 도우미로 뽑아 자존심에 상처가 없도록 학습지도를 했었다.
그 중 A군은 늦둥이로 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 했지만 학교생활에서는 학습부진, 도벽, 친구 괴롭힘 등으로 교사들도 기피하는 문제아였다. 하지만 다른 아이와 똑같이 도우미로 배려하고 지도했더니 그 마음을 알아준 건지 학기말에는 중위권에 오를 만큼 태도가 바뀌었다.
도벽을 없애기 위해 학용품을 사주고 반 아이들과 군것질도 하게 용돈을 줬다. 너무 가난했던 A군은 군것질 할 용돈이 없어 한 번 두 번 훔치다보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What the hell)효과’로 이어졌던 것이라 판단해서였다. 교우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모둠학습, 공동과제 활동을 활용했다. 다행히 초등생이다 보니 치유가 빨랐다. 공감과 배려의 효과였다.
학생 지도에서는 호감이 전략을 이길 수 있고, 자비가 정의에 우선할 수도 있다. 그것이 사제 간 인간관계의 독특함이고 교육의 특수성이다. 오늘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나 교육 생태계가 여전히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은 건전한 교직관을 가진 교사의 기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과 ‘교원 예우에 관한 규정’으로 여타 공무원보다 예우하는 것이다.
오크 학교의 일화는 교사가 학생들의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그 책무성과 사명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지 새삼 곱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