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모 중학교에 새내기 교감으로 부임한 L교감(48세). 그는 다가오는 기말고사가 두렵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말고사 후 담임이 써오는 가정통신문 보기가 무섭다.
가정으로 나가는 1,400여 학생들의 통신문을 읽는 것은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잘못된 것을 일일이 고쳐주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2학년 어느 반의 경우, 글이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비(非)문장인 것을 재적 수의 반 이상이나 고쳤다. 세태가 변해서인지 고쳐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는 담임도 많지 않은 듯하다. 분명히 교감이 고쳐 준 것이 맞춤법에도 맞고 용어도 정확하고 더 세련된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 그 알량한 자존심이 도대체 무엇인지, 교감이 고쳐준 것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뒤에 가서는 투덜댄다.
그는 이웃학교 동료 교감에게 실태를 알아 보았다. “가정통신문, 교감이 다 읽어 봅니까?” “그 많은 것을 언제 다 읽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고 있죠?” “썼나, 안 썼나만 확인하고 있죠.”
L교감은 다시 한번 자신의 교육철학과 교감으로서의 직무 수행 태도를 생각해본다. ‘내가 너무 세상을 원리원칙대로, 피곤하게, 모나게 사는 것은 아닌가?’ ‘그냥 둥글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는 교감으로서 전교생의 가정통신문을 올해 총 세 번 읽었다. 1학기 중간고사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말고사에는 교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2학기 중간고사에는 ‘그래, 이것이 내가 할 일이지. 이것이 선생님을 도와주는 것이고 교육발전의 작은 초석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니다’ 싶은 통신문은 연필로 수정, 출석번호를 표시하여 담임에게 돌려 주었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단편적인 예로 “기초 실력이 부족하오니 가정에서 훈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지도 관심바랍니다.”, “1학기 때보다 성적이 많이 진보하였습니다.”, “맡은 바 일을 잘하는 괜찮은 녀석입니다.”, “칭찬하여 주십시요.” 등을 “기초 실력이 부족하오니 가정에서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관심있게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1학기 때보다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맡은 바 일을 잘하는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 “칭찬하여 주십시오.” 등으로 수정하였다.
그는 가정통신문에 관한 교육신념이 뚜렷하다. 학생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문장으로, 긍정적인 면을 먼저 쓰고 개선할 점은 나중에 짧게 쓰고, 처음․가운데․끝 체제를 유지하고, 맞춤법에 맞게 쓰고, 미심쩍으면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그는 교육부장관, 대학 총장, 교육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생각과 행동에 있어 기본이 바로 된 교사 양성에 함께 힘을 모았으면….” “우리의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교사를 배출하였으면….” “임용 시험 교직과 관련된 교양에서 국어 사용능력 비중을 강화하였으면….”
그는 혼자 되뇐다. ‘가정통신문을 자신있게, 제대로, 당당하게 보낼 수 있는 교사가 많은 것도 교육력이고 국력일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