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은 무언가의 상징물이다. 국기는 나라를 상징하고 교기는 학교를 상징한다. 그러나 깃발을 상징물로만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적어도 '2002 깃발미술축제(Flag Art Festival)'가 한창인 서울 난지천공원에서는 그렇다.
이 축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깃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바람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이 깃발전시행사는 시를 써내려가듯 자연의 역사를 기록하는 바람과 그 바람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깃대가 없어도, 혹은 자로 잰 듯 네모 세모 반듯한 모양이 아니어도 의미를 담고 바람에 나부끼는 것은 모두 깃발이 될 수 있다.
행사에 전시된 600여점의 깃발과 40여점의 설치미술작품은 '상징'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예술' 차원으로도 깃발을 감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지천공원 입구 주변에는 국내 유명 서예가들의 축하휘호깃발이 줄지어 서있다. 액자에 걸리는 것으로만 알았던 서예가들의 필체는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6미터 깃발 위에서 또 다른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돔 모양의 건물 전체가 화려한 오색 깃발로 펄럭이고 있다. 여기서는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이 오색천에 직접 소원을 적어 매다는 '깃발에 소원담기'가 행사 기간 내내 계속된다. 이미 5,000여명이 족히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바람에 띄워놓고 돌아갔다.
월드컵문화행사답게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비는 깃발이 대다수였지만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도, 합격을 기원하는 수험생들의 간절함도 깃발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공원 입구 주변 보행로는 평소 보기 힘들었던 한국의 전통깃발인 군기, 의장기, 각종 민속기들로 미술공부의 산 현장이 된다. 피크닉장 주변에서는 45개국 해외 작가들의 창작깃발을, 중앙광장 일대에서는 국내 미술가들의 창작깃발을 감상할 수 있다. 파스텔화를 천에 옮겨놓은 듯한 은은한 회화 작품부터 강렬한 원색의 추상화까지, 400여점의 깃발들은 마치 야외 미술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안겨준다.
공원 내 연못 일대에는 '자연의 재발견'을 주제로 환경 설치미술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오염된 물을 떠나 대나무 막대에 꽂혀버린 모형 물고기들의 작품 제목은 '숲으로 간 물고기'이다.
난지(蘭芝)라는 이름에서 고고한 화초 대신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공원으로 변신한 난지도는 이미 강한 환경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난지도의 역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 곳에서 행사의 주제인 환경과 평화에 대한 바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한 바람개비 만들기와 천 위에 색종이나 꽃잎 등을 붙여 직접 깃발을 만들어볼 수 있는 염색깃발마당도 열린다. 행사는 오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