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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선생님! 제가 우울증인가 봐요

점심을 먹고 난 뒤, 간단한 산책을 하기 위해 교정을 거닐었다. 비라도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지만 바람 한 점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주머니 안에서 잠자고 있던 휴대폰이 잠에서 깬 듯 울리기 시작하였다.

휴대폰을 꺼내들자 전송된 문자메시지 하나가 액정 모니터 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전화번호가 낯익어 확인을 해보니 우리 반 한 남학생이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그런데 그 내용은 길지 않았지만 심각한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우울증인가 봐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이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를 몰라 한참을 망설인 끝에 우선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해주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메시지를 보내는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무슨 일이니? 아무튼 교무실로 내려오길."

그 학생이 교무실로 내려오기까지 자리에 앉아 여러 생각들을 하였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대학 문제 때문일까? 아니면 가정 문제 때문일까? 등의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잠시 후, 상기된 표정으로 내 앞에 선 그 남학생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굳어져 있었다. 표정으로 보아 고민의 심각성을 읽을 수가 있었다. 우선 그 아이가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 하였다. 그리고 고민거리를 물어보기 전에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일상적인 말로 편안하게 제자를 대했다.

"그래, 점심은 먹었니? 아픈 데는 없니? 공부하기 힘들지?"

내 질문에 그 남학생은 모든 일이 귀찮은 듯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O O 아,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해 보렴."
"선생님!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말에 웬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시간표를 확인해 본 결과 다행히도 오후 수업이 없었다. 학교에서 바다가 있는 경포까지 가는 동안 그 학생과 나는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 학생은 내내 차창 밖만 주시하였다. 그리고 나는 운전을 하면서 도착하면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를 머리에서 짜내고 있었다.

바닷가가 가까워질수록 바다 그 특유의 염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바다였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자주 찾아오지 못함은 그 만큼 생활에 여유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넓은 백사장을 두고 펼쳐지는 바다의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우울증으로 고민하는 제자의 기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감정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오히려 제자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옆에서 나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건넸다.

“선생님도 기분이 좋으시죠? 그리고 요즘 저희들 때문에 힘드시죠? 힘내세요. 선생님!”

제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였다. 위로를 받아야 할 제자가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있지 않은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사실은 요즘 들어 저희에게 짜증도 많이 내시고 힘들어하는 선생님 모습이 안쓰러워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그 말에 대꾸도 하기 전에, 제자는 내 손을 잡고 강제로 나를 끌고 바다로 가는 것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제자의 그런 행동이 미워 보이지가 않았다. 순간적으로 나는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매일 밤 열한시까지 자율학습으로 지쳐있는 아이들이다. 오늘 보여준 제자의 행동이 나에게는 자신들을 더 열심히 지도해 달라는 사랑의 채찍질로 받아들여졌다. 아이들은 선생님인 나와의 벽을 허물어 버리려고 애를 쓰는 반면 나는 그 벽을 쌓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 우리 반 아이들 38명의 얼굴들이 아스라이 떠올려졌다. 앞으로는 제자가 먼저 나를 아는 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제자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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