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퇴근길이었다. 아파트 놀이터 벤치 위에 무엇인가를 두고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말싸움을 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궁금하여 다가가 살펴보니 누런 보리 이삭을 두고 아이들은 자신이 내세우는 것이 맞는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결국 그 싸움은 보리냐? 아니면 밀이냐? 두 가지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끼리는 도저히 판가름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더 이상 분위기가 험악해 지기 전에 누군가가 중재 역할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할 수없이 그 중재자로 내가 나섰다.
나는 밀이라고 고집하는 아이에게 보리와 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도 그 아이는 내 말이 믿어지지가 않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 말이 끝나자 그 아이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기의 집을 향해 슬그머니 놀이터를 빠져나갔다.
한편으로 끝까지 보리라고 고집을 부렸던 아이는 의기양양하여 친구들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맞는다고 하는데 계속해서 우기고 난리야.”
도심지 아파트 단지 주변에 보리밭이 있는 것이 드문 일이다. 언제부턴가 매년 5월이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보리였다. 그리고 6월초가 되면 이삭이 누렇게 변하면서 낱알이 익어간다.
사실 그 보리밭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아침 출근길에 누렇게 익어 가는 보리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풍족해져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마도 요즘 아이들은 내가 느끼는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우리 주변에 보리밭이 있는지 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과후에는 서너 개의 학원을 다니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저녁 자투리 시간에는 학교 및 학원 숙제로 하루를 보내야만 하지 않은가. 과연 이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시간을 조그만 투자하면 우리 주변에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라고 본다. 단편적인 지식보다 자연을 벗삼아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이들의 성격형성에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꽃 이름하나를 가르쳐 주는 자체가 바로 자연을 알게 해주는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 보리와 밀을 놓고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쳐주기 보다는 그것을 보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기성 세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공통점이 있다. 십대가 무서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당연하게 말한다. 어쩌면 이 무관심이 그들을 겉잡을 수 없을 정도의 비행으로 내 몰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대부분의 부모들이 학교 성적을 위해서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부모로서의 그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나 너무 지나친 행동은 오히려 아이들이 중요한 무언가를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부모들이여!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자. 어쩌면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들을 자연에서 배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PC방, 노래방, 비디오방 등에서 해소하려고만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자연을 찾아 삼림욕을 함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연처럼 세상을 바르게 볼 줄 아는 안목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