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교, 새 학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서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을 때 학급이란 공동체 주변을 맴돌며 웃음을 잃은 채 친구들의 관심 밖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아이가 있었다. 4월이 되자 아이들의 호소가 줄을 이었다. 발을 걸었다느니, 때렸다느니, 물건을 감추었다느니...
평균 이틀에 한 번씩 상담을 하였건만 5월이 다 지나갈 즈음에도 그 어떤 행동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다 못하여 학급어린이들과 함께 6월 한 달은 준혁이가 달라지기를 위하여 함께 힘을 모아 보자고 하였다.
다음은 “FOR 준혁”이란 제목으로 위즈클래스 '우리 학급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선생님이 처음 여러분들을 만났을 때 꿈에 부풀었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얀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까 생각하면 마구 가슴이 뛰었지요.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과 함께 지내 온 날들이 너무나 행복하였어요. 체육대회, 학예회 등 큰 행사를 너무도 의젓하게 척척 치러내는 여러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였고 여러분들이 일기장이나 쓰기 책, 또 글짓기를 하면서 순진하고 정직한 글들이 선생님을 감동시키는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 이예요. 그런데 마음 한 구석 늘 편치 않는 일이 있었답니다.
바로 준혁이 때문이었어요.
준혁이는 이런 모든 일들에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어요. 언제나 혼자 관객인양 바라보고만 있었죠.
체육시간에만 관심을 조금 보일 뿐 책과 공책 연필을 아예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주간학습계획에 준비물이 명시되어 있지만 가지고 올 때가 없었어요. 간신히 리코더를 마련하고 막 리코더 연습이 시작되어 친구들이 재미있게 아름다운 가락을 만들어 갈 때도 준혁이는 악보를 보지 않고 운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혼자 아무렇게나 불어서 이상한 음을 내곤 하였어요.
준혁이는 '집중'이란 단어와 아주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미술시간이나 과학시간에 전담선생님께서 수업하고 나가시면서 "선생님, 준혁이 어떻게 해요? 수업할 생각을 안하고 멍하니 앉아 있어요." 하고 걱정스럽게 말씀 하시곤 하셨어요. 전담시간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나 봐요.
선생님 머릿속에는 늘 준혁이 생각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멀리서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 하고 달려오게 할까?
어떻게 하면 아침에 선생님을 만나면,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안녕?“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하게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 학급 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재미있게 생활하도록 할까? 하고 말이예요.
언젠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할 거예요.
준혁이가 머리가 참 좋은 아이라고... 여러분들도 그 말에 다 동의를 하였어요. 준혁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따로 불러서 늘 주의를 주면 입으로는 “네.“ 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늘 먼 산만 바라보고 전혀 달라지는 기색이 안보였어요.
오늘 드디어 선생님이 선포를 했답니다.
"FOR 준혁!“ (준혁이를 위하여!)
내일 여러분들이 우리 교실을 들어오면 “FOR 준혁!” 이란 카드 6개를 발견할 거예요. 그것은 그냥 붙여놓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선생님이 준혁이를 위하여 6월 한 달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줄 공책 하나씩을 준비하라고 했어요. 거기에 일기장처럼 매일 한 줄씩 준혁이를 위하여 한 일을 적어보는 것 이예요.
준혁이도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읽는 한 앞으로 많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달라질 수 있어요.
눈을 한 번 만 준혁이에게 돌려보세요. 그리고 준혁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가가서 얘기를 나누어 보세요. 준혁이가 교실 밖의 세계에서 교실 안의 세계로 돌아오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요. 모두모두 할 수 있죠?
우리 함께 외쳐요. 준혁아, 사랑해!
“FOR 준혁!”을 선포하고 반 전체가 힘을 모은 한 달.
우리 반 아이들은 준혁이의 필통을 열어보고 연필이 없으면 연필을 깎아서 넣어주고 지우개가 없으면 지우개를 넣어주는 등 준혁이의 필통에 관심을 가졌다. 공책을 꺼내지 않고 앉아 있으면 자기들이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던 공책을 주고 틈틈이 가방을 열어 책도 정리해 주며 준비물을 안 가져 왔으면 함께 나누어 가지기도 하였다. 수업시간에 과제가 끝난 아이들은 준혁이에게 가서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기도 하고 하루 전 준혁이 집에 전화를 걸어 준비물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였다.
전에는 준혁이가 조금만 툭 쳐도 와서 이르거나 울거나 하던 아이들도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웃어 주었고 매일 매일 써서 준혁이와 함께 읽어보는 “FOR 준혁!” 공책에 어떤 아이는 자기 전에 준혁이가 달라지기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고 써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준혁이가 웃기 시작했다. 그것도 소리 내어 활짝! 천사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 준혁이는 대화와 관심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방과 후엔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준혁이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모습이 보이면 친구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한없이 무겁게만 보이던 준혁이 몸이 그렇게 가볍고 재바른지 몰랐다.
준혁이는 체육시간에 매우 흥미를 느낀다. “FOR 준혁!” 이전에도 체육에는 조금 관심을 보이기는 했었다. 그러나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고 공동체 가운데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마음껏 알리는 그런 체육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음악 시간에 악기다루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데 특히 실로폰 열심히 친다. 수학시간에는 머리를 써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도형 움직이기 단원에서 다른 사람이 잘 알아내지 못하는 문제를 맞추기도 하였다. 연필을 들어 글씨를 쓰고 문제를 푸는 등 교사와 눈을 맞추며 잠재해 있던 ‘집중’의 능력이 그렇게 조금씩 발휘되고 있었다.
분명히 준혁이가 달라졌다. 우리 반 아이들의 사랑과 관심이 준혁이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드디어 열게 된 것이다.
6월엔 우리 반 어린이들이 준혁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었다면 7월엔 준혁이가 우리 반 모두에게 사랑을 주리라 기대해 본다. 나도 매일 아침 준혁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활기찬 하루하루를 시작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