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일 오후 6시 30분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물결 김병호 선생의 퇴임문집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교직 생활 36년을 마감하는 퇴임을 앞두고 본인과 가족, 지인과 친구 분, 제자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 퇴임문집출판기념회를 가진 것이다.
퇴임을 기념으로 엮은 책을 나누어 주는 정년퇴임식에 여러 번 참석해 본 경험이 있지만 이번 일은 매우 신선하고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그것은 간혹 평교사로 퇴임하시는 분들이 행사의 규모를 축소하여 학교단위로 간략히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물결 김병호 선생의 퇴임식은 평교사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의 규모에 있어 그 어느 교장선생님의 퇴임식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식이 시작되기 전 둘째 따님의 가야금 연주가 있었다. 유아교육 박사과정, 대학 강사로 바쁜 와중에서도 틈틈이 익힌 연주 솜씨로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곡들을 연주하여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물결 선생께서 민속학에 특히 관심이 많으시고 전통문화에 애착이 남다르시니 자연이 자녀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모님께서도 창을 부르며 장구를 치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다.
퇴임문집출판기념회가 막 시작되려고 할 때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생의 양가의 친척 되시는 분들, 학교 선후배, 지역주민, 다양한 사회봉사로 인연을 맺은 분들, 경주 시장, 교육장, 대학 관계자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가운데 그 넓은 홀이 가득 메워졌고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또 아흔 다섯 살의 작은 어머니와 허리가 90도로 굽은 장모님을 소개하실 때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선생의 효심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자리에서도 어른을 최우선하여 섬기는 일면을 볼 수 있었다.
물결 선생은 문집 서두 인사말에서, “어느덧 세월은 바람 속에 나부끼고 있다. 나의 잔뼈가 굵고 꿈과 이상을 키우며 뛰놀던 수봉동산 모교에 들어와 학창시절을 회상하면서 은사님들과 선배님들의 가호를 받으며 동료선생님들의 도움과 후배 제자들의 진솔한 참모습 속에 30여 星霜이 지나고 중 ․ 고 학창시절 6년 그러니 36년 5개월 만에 겨우 교문을 떠나는 낙제생 늦깎이 졸업생이다"라고 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에서 제자들을 키우며 오직 근면과 성실을 모토로 지역을 위한 환경지킴이, 전통문화 지킴이로 각종 사회 봉사활동에 정진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향하여 달려오셨던 물결 선생. 퇴임을 맞게 된 지금, 선생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50대 후반 당시는 흔치 않았던 남자로서 대구 효성카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가정학과에 입학하여 만학의 꿈을 실현하며 학문에 열정을 쏟았던 학구열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선생은 항상 가정과 가정교육을 중요시 하였는데 이는 선생으로 하여금『청소년 학교폭력의 실태 및 원인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쓰게 하였다.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 사회상황에 비추어 볼 때 물결선생이야말로 교육자의 눈으로 앞일을 예견한 선견자적인 인물이 아닐까 한다. 이 논문은 우수 논문으로 지정되어 대한 가정학회 주최 제 52차 정기총회 때 발표되었다.
물결선생은 자녀를 셋 두었는데 요즈음 젊은 청년들 중에 정말 보기 드문 예의바른 청년들이다. 나는 선생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자라온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선생은 항상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의 일을 철저히 감당하도록 교육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기본생활 습관을 어릴 때부터 몸에 베도록 늘 지도하신 까닭에 그들의 언어나 행동은 매우 분명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자신의 입장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행동에 익숙하다, 이는 물결선생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빈틈없이 행동하고 매사에 철두철미함의 원칙을 고수하는 가정교육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선생은 우리나라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향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명절에는 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민속행사를 주관하기도 하셨는데 시민들과 함께 찰떡을 만들고 전통 줄넘기를 하시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동안 물결 선생을 옆에서 뵈면서 다산 정약용을 많이 떠올렸다. 선생은 속하신 단체나 주변을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정신을 항상 가지고 계시고 비능률적이고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없애고 모든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생활하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연구하시며 늘 가족사랑의 마음이 애틋하신 모습을 보아서이다.
견문을 넓히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시며 자녀들로 하여금 찬란한 역사가 살아 숨쉬는 나라를 여행하도록 권유하시고 지난 겨울방학에는 아들과 함께 한 달간 인도여행을 다녀오신 후 겪으셨던 일들을 얘기하시며 가슴벅차하셨다.
선생은 또한 두충나무에 대하여 연구하며 고향에 두충나무를 심어 보급하여 농촌 가계에 보탬이 되도록 도왔던 일과 꿀벌을 키워 벌침을 연구하며 병원에 가도 잘 낫지 않는 질병을 갖고 있는 이웃주민들을 벌침으로 치료하셔서 이웃주민의 칭송을 한 몸에 받기도 하였다.
선생은 특히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하여 각종대회에 출전하며 산수유 씨앗과 과육 분리기 제작, 광전장치 응용의 이해, 정투상도 실물 제작 지도의 교편물을 제작하는 등 부단한 연구자세로 임하여 학생들과 함께 기쁨과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선생은 이미 1985년 청소년연맹 수석전임지도자가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청소년연맹 전통문화기능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청소년 단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학생들에게 정신력, 호연지기, 극기력을 키우도록 하는데 조력자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 멋진 분이셨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퇴임문집출판기념회는 선생의 그동안의 업적을 기리는 자리기도 하였는데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고 내빈들께서도 자리를 끝까지 지키셨다. 물결 선생이 퇴임문집출판기념회를 마지막으로 교육계를 떠나게 되는 현실을 모두들 아쉬워하는 그러한 자리였다.
선생께서 요모조모 아름다운 집을 가꾸어 가시는 것을 뵈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텃밭도 일구시고 자투리땅을 이용하여 서재를 조립식 건물로 지으셔서 초야의 선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앞으로 비워 둔 세월을 책 읽는 것으로 메우시고 사실 물결 선생, 성실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우러나는 연륜의 원숙함으로 모든 사람이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되어 주시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