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교원단체의 반발과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그동안 논의하며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해왔던 사항들을 아예 무효화한 채 전격 교원평가제 시범운영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어사전에는 ‘강행(强行)’이란 단어를 ‘강제로 시행함, 억지로 함’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발표는 앞으로 유사 정책을 합의없이도 강제로 시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서 앞으로 사회의 전례 없는 갈등과 폭발적인 대립국면의 조성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지금 학부모와 언론은 이른바 실체도 없는 '대세론'을 내세우며 작금의 대립․갈등이 교원단체들의 조직적 이기주의 탓이라고 몰고 있다. 교원평가제만이 이 나라 교육을 살리는 길인 양 여론을 호도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학부모’를 힘입어 처음으로 좋은 제도를 시행하려하는데 마치 교사들의 이기주의로 벽에 부딪친 것처럼 매도하고 있어 안타깝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라지만 일부 학부모 단체나 언론은 교육환경이 후진국 수준인 우리나라 일선 학교의 사정을 얼마나 알고 있으면서 '국민의 요구'니 '대세'니 운운하는지 묻고 싶다.
OECD 회원국 30개국 중 국가 경제규모가 11번째라는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환경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 나라의 학교교육여건의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변수인 학급당 학생수와 교원 1인당 학생수만 보더라도 OECD 국가 평균치에 크게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임은 이미 주지된 사실이다.
또한 2006년에도 법정교원 수 확보가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교사의 수업부담 및 잡무처리가 오히려 가중됨으로써 또다시 우리는 학부모의 요구와 교육의 본질 사이에서 '철인'이 되어야 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런 상태에서 개관성이 보장되지 않은 감정이 앞선 교원평가만으로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어떤 나라가 해가 뜨기도 전에 집합하여 한밤중 찬 이슬이 내릴 때까지 입시지옥에 학생들을 가둔채 '공부선수'를 만들며, 일류대 입학생수로 명문고를 판가름하는가. 이런 판국에 교원평가제를 강행하자는 심사는 학생들을'공부하는 기계'로 잘 만들어내 얼마나 학부모의 기대에 만족시키는지를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이왕 입시지옥으로 무너진 학교이니 교사를 그저 ‘공부 잘하는 우수한 기계’만 잘 만들어내는 '엔지니어'로 평가하자는 말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누누히 말하지만 교원의 자질이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처럼 교육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교원의 자질과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 따라서 교육을 개혁하고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켜 궁극적으로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교원평가라면 원칙적으로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교직을 평가하려면 교직 이상의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가 그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한데 오늘날처럼 상급학교 진학에 온 관심사가 집중되어 있는 학생, 학부모가 종합예술에 가까운 교육 활동의 독창적인 전문 영역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오직 자기 자식만을 위하여 촌지를 바치고, 성적조작을 강요하던 학부모의 과거행위나 정년단축 등 정부의 정책 실패 경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면서 교원평가가 곧 교육개혁이라는 인식 하에 강행하게 된다면 평가의 궁극적 목적인 객관성, 공정성에 얼마나 접근 할 수 있을지는 자명하다.
그동안 '정부안대로 강행하겠다'는 발톱을 음흉하게 숨긴 채 형식적인 논의와 협상을 벌이다가 결렬되자 여론이라는 무기를 업고 모든 책임을 교원단체에 덮어씌우는 교육부는 비겁하다 못해 치졸하다. 이번 강행 방침은 그동안 폭발적인 위험을 가진 정책을 밀어부쳤다가 오히려 부작용만 낳고 실효를 거두지 못한 여타의 졸속안과 다를 바 없다.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고 망쳐놓은 자들이 오히려 설치면서 책임의 교사에게 미루고 여론을 호도하는 작금의 모습들이 우습기만 하다. 교원평가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최소한의 여건조성을 한 다음 실시해야 충돌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