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OOO선생님 핸드폰 아닙니까?” “네, 그런데요.” “선생님, 저 기억 안 나세요? OO회 졸업생 OOO입니다.” “누구라고?” “선생님에게 많이 맞았던 OO인데 모르시겠어요?” “그래, 기억이 나는구나. 잘 있었니? 그런데 요즘 무엇을 하고 있니?” “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취업하기 힘든 요즘인데 잘 되었구나.” “모두가 선생님 덕분입니다.”
토요일 밤 10시.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액정 모니터 위에 찍힌 번호가 낯설었다. 전화를 받자,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제자의 전화였다. 학교 다닐 때 무척이나 내 속을 썩인 아이였다. 학생과에 자주 불려와 선생님뿐만 아니라 전교생 모두가 그 아이의 얼굴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 아이의 부모까지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지금에야 생각해 보니 그 녀석이 졸업을 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잦은 결석으로 인해 하마터면 졸업을 못할 뻔하였다. 그런데 간신히 설득을 하여 수업일수를 채워 졸업을 시키기는 했으나 학창 시절에 했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사회에 나가서도 사람 구실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그 녀석은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 아이는 매사 모든 것에 부정적이었고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였다. 하물며 학교에 나와 공부를 왜 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사춘기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만 되는 그런 가슴앓이의 차원이 아니었다. 본질부터가 잘못된 아이였다. 매번 사고를 칠 때마다 내가 그 녀석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OO아, 너는 자신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네 안에 잠들고 있는 자신을 일깨워 보거라.”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녀석은 학창시절 내가 한 이야기를 실천하기 위하여 무진장 애를 썼다고 하였다. 그리고 군에 입대를 하여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기도 했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군 복무 3년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준 전환점이 되었다고 녀석은 말하였다. 전역이후, 뜻한 바가 있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였고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 합격의 영광을 얻었다고 하였다. 합격한 날,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선생님인 ‘나’였다고 하였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하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교단에 선 지 15년이 지난 지금. 가끔은 교직 생활에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 교단을 지켜나가고 있는 이유는 졸업을 한 제자들의 반가운 소식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교사로서 내 마음의 보석상자 안에는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한 제자가 있기에 행복한 지도 모른다.
전화 상으로 그 제자와 나는 지금까지 못 다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주고받았다. 학창 시절,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을 하게 해준 것에 대해 제자는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졸업 후, 대면한 적은 없지만 통화를 하면서 불현듯 많이 변한 제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무엇보다 제자의 마지막 말은 내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