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초 ․ 중 ․ 고등학교를 거쳐 오면서 한 번이라도 학교에서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가벼운 꿀밤으로 그칠 수도 있고, 선생님의 심기가 불편하신 날은 전원이 무릎 꿇고 1시간 이상 기합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의 ‘사랑의 매’ 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사랑의 매’ 라는 말은 그 본래 의미를 잃어가고 학생들은 체벌하는 선생님을 교육청에 고자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성적이 안 좋은 학생에게 200㎖부피의 잔으로 최다 20잔까지 물을 먹인 소위 ‘물고문 교사’(경기도 용인의 한 교사가 시험 성적이 안 좋은 제자 10여 명에게 물을 먹도록 한 사건이 있었다. 물을 마신 학생들은 구토와 복통 증세를 보였다고 하는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자들과 합의한 벌칙이었다고 한다.)가 이슈가 되었고, 제주도에서도 떠드는 아이에게 살충제를 뿌린 초등교사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또 이러한 체벌 문제와 관련하여 비관, 자살한 선생님도 있었다.
조용하다 싶으면 예고 없이 터지고야 마는 체벌문제. 이성을 잃고 포효하는 학부모들이 교무실까지 쳐들어와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는다고 하니, 교권까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이 되었다. 학생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몇 해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체벌에 관한 규정을 보면 황당함은 배가 된다. 또한, 무분별하고 상습적인 체벌이 부적격 교사의 퇴출 요건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였으니 한마디로, 함부로 때리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낭패를 볼 수 있는 문제이기에 앞으로 교단에 서게 될 예비교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현재 우리나라의 체벌 규정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까한다.
아직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체벌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물리적 도구나 신체의 일부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직접적으로 교사가 학생의 신체를 접촉하여 고통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간접적 고통을 주는 것도 벌의 목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인 이상 개념적으로 체벌이라 할 수 있다. 즉, 체벌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 접촉을 통해 고통을 주어 처벌하는 것은 물론, 직접적 접촉은 없으나 여러 유형의 행동 제약을 통하여 처벌하는 것도 포함한다.
체벌이 논란이 되는 것은 어느 선까지를 ‘교육적인 체벌’ 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체벌’ 이라는 하나의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사람마다 생각하고 있는 구체적인 개념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체벌 관련 논쟁은 어느 선까지를 비교육적인 체벌로 볼 것이냐 하는 기준 정하기가 선행되어져야 하며 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현실적 교육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에 따라 각 나라의 체벌 규정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캐나다, 태국 등은 체벌을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 체벌을 교사의 권한으로 인정한 주도 있고, 법으로 금지한 주도 있다. 일본의 법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체벌을 가할 수 없지만,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감독청이 정하는 바에 의해 징계를 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유럽계 국가와 이슬람 국가 등은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웨덴에서는 교사는 물론 부모도 가정에서 아이들을 체벌하지 못하고, 프랑스 체벌관련법은 교원이 학생을 ‘너’ 라고 부르는 것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국의 한 시교육청은 한 교사가 제안한 바에 의하여 학생들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10대 금지어를 공식 채택하기도 했다. ‘바보’라든지 ‘쓸모없는 인간’과 같은 모욕적인 언사나 ‘다시 장난치면 부모를 부른다.’, ‘이런 성적이면 장래가 뻔하다.’는 등의 협박성 엄포를 포함한다. 이런 금지어 이외에도 ‘너를 구할 약은 없다’, ‘너 같은 학생은 어디에도 없다’, ‘부모에게 미안하지 않느냐?’ 등의 비교육적 언사 역시 사용해서는 안 될 금지어로 지적되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체벌이 불법화되는 것은 세계적인 대세임에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체벌 규정도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체벌 규정 짚어보기
체벌에 관한 규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하자면 꽤나 길어지겠기에, 생각해 볼만한 조항만을 짚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제 1 장 총칙 제 1조 (체벌) 학생의 훈육 ․ 훈계를 위하여 행하는 체벌은 원칙적으로 지양한다. 다만, 교육상 불가피할 때에는 학생에게 매 또는 그 외의 신체적 고통(이하 기합이라 한다)을 가할 수 있다. (중략) 제 5조 (사전 확인) ② 교사는 체벌 전에 학생의 체벌 수용 여부에 대한 의사를 묻고 체벌을 수용한다는 의사표시가 있을 경우에만 체벌을 행한다. 만일, 당해 학생이 체벌을 거부하고 그에 상응한 체벌 외의 다른 조치를 원할 때에는 학교가 이를 수용해야 한다.
- 드디어 그 교육상 불가피하다는 경우가 생기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매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는 교사 앞에서 체벌을 받을 학생이 아주 당당하게 “전 안 맞겠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체벌할 수 없다. 몸 풀던 교사가 아주 뻘쭘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제 6조 (구두 허락) 학생에게 체벌을 주고자 할 때에는 학교장 또는 교감에게 사전 구두 허락을 얻고 실시하여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체벌 후 사후 보고를 할 수 있다.
- 여기서도 역시 교사의 자율권이 무참히 짓밟힌다. 규정대로 한다면 교사가 매를 들기 위해서는 교장실로 내려가 “교장선생님, 때려도 되죠?” 라고 물어봐야 한다. 물론 현장에서 이 조항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 지는 미지수이다.
제 2 장 기합에 의한 체벌 제 12조 (기합의 종류) 기합은 다음과 같은 종류로 한다. 1. 손바닥, 팔 및 몸을 펴고 땅에 엎드려 있기 2.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 3. 무릎을 꿇고 앉거나, 서서 손을 높이 들고 있기 4. 일정한 거리를 정한 시간에서 뛰기 5. 청소하기
- 아무리 창의력이 뛰어난 교사라 하더라도, 이 외의 그 어떤 기발한 방법이 있다하더라도 이외의 기합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 위 조항에 의하면 ‘무릎 꿇고 앉아 손 높이 들기’ 는 안 된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또한 유념하도록.
제 3 장 매에 의한 체벌 제 18조 (매의 횟수 제한) ① 매에 의한 체벌을 할 경우 하나의 사안에 대한 체벌로 5대를 넘지 못한다. ② 사안별 매의 횟수 제한은 다음과 같다. (생략)
- 친절한 교육부……. 오지랖 넓게도 매의 횟수까지 정해주시었다. 당연히, 선생님이 매를 들다가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더 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 20조 (매의 비치와 종류) ① 학교는 매(지름 1㎝, 길이 50㎝)를 교장실과 교무실 등 학생의 일상 생활공간이 아닌 장소에 비치해 놓는다.
- 그 옛날 선생님들의 체벌 대용도구였던 청소함 속 빗자루나 교탁 아래 숨겨져 있던 50㎝자는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니 정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제 21조 (사전, 사후 처리) ① 체벌의 징계를 받은 사실에 대하여 학부모 또는 보호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
- 이 부분에서 교사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만약 체벌을 한 학생의 부모님이 혹시라도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계시거나, 지체 높으신 분들이라면? 체벌한 사실을 통보할 때에 곤욕을 치를 수도 있을 것이다.
슬프지만 진실
체벌을 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정해진 기준에 의하여, 정해진 부위에, 정해진 도구로, 정해진 횟수만큼 체벌해야 뒤탈이 없다. 마치 가상현실인양 위의 조항들을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말았지만, 이것은 결코 가상이 아니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며, 어디에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체벌에 관한 규정을 일선 학교에서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이 규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솔직히 현행 체벌 규정을 알아보면서 느낀 점은 교사의 자율권이 상당 부분 침해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체벌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기도 하며 교권수호를 위해 일정부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물론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체벌을 하고, 거의 폭력수준의 체벌을 일삼는 교사들도 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학생이 선생님을 고발하고 학부모가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무분별한 행동을 그냥 두고 보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매를 들고 기합을 주는 것만이 ‘벌’이라 생각하느냐고 반문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보다 긍정적인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본 적도 없으면서 체벌만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체벌 대신, 시를 외우게 한다든가, 친구를 돕게 한다든가, 상담원으로 일해 보게 하는 방법 등으로도 얼마든지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비교사들이여,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요즘의 사제관계에 대하여 흔히 교사와 학생은 존재하지만, 스승과 제자는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 이들을 작금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는가? 끈끈했던 사제 간의 정은 또 어디로 갔는가?
겉으로는 체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스승과 제자 간의 믿음이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선생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왜 그렇게 변해버렸는지를 깨닫는다면, 앞으로 교사가 될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며, 스스로가 체벌에 대한 나름의 철학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육도 바뀌고 있다. 이 변화의 바람이 약이 될 것인지 독이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벌을 받겠다고 하는 학생과 자신의 종아리를 걷어 올리는 교사가 남아있다면, 현실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매’ 또한, 언제까지고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