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수요일. 봄을 재촉하듯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1교시 수업시간. 창문 쪽에 앉아 있던 한 여학생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지금 입고 있는 옷 마음에 드세요?" "왜? 이상하니?"
"그런 뜻이 아니라 옷 색깔이 조금∼" "옷 색깔이 왜?"
"검정 색은 선생님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 보여요." "이 옷 비싸게 산 건데?"
"선생님은 밝은 색이 더 잘 어울려요." "난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TV도 안 보세요? 지금 선생님은 몇 세기 때의 복장을 하고 있는 줄 아세요?" "글쎄."
수업이 끝난 뒤, 그 아이의 말이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 아이가 한 말에 과민반응을 보인 탓일까?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어두워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옷차림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터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부터 전반적인 나의 코디는 아내에게 맡겨졌다. 그런 탓에 선생님들 사이에 코디 감각이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무엇보다 아내가 아침에 출근하는 나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복장부터 단정해야 해요."
사실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하는 기간이라 옷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탓도 있다. 하물며 어떤 때는 똑같은 옷을 며칠 입고 다닌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일까?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선생님의 그런 모습들이 화제 거리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특히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나 또한 질세라 아이들의 복장에 대해 흠을 잡으려고 애를 썼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들은 방학중에도 교복을 입고 수업을 받는 터였다. 흠잡을 곳이 있다면 고작해야 치마길이 뿐이었다.
퇴근하여 아내에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내심 아내가 옷 한 벌을 사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아내가 한참을 웃는 것이었다. 웃고 있는 아내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아 화를 내며 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웃소?" "당신은 좋으시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요." "반 아이들이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거예요. 관심이 없다면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설마, 그럴 리가? 담임을 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여자의 육감은 정확한 걸요? 두고보세요. 어쩌면 그렇게 말한 아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러니 앞으로 복장에 특별히 신경을 쓰셔야 할 거예요."
그 말을 하고 난 뒤, 아내는 옷장에서 다음 날 입고 갈 화사한 옷 한 벌을 꺼내놓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생활의 연속성에서 아이들은 작은 변화를 선생님인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아이들이 나의 복장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복장을 한 채로 아이들 앞에 서 무미건조한 수업을 전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