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머니 상은 어떤 것일까? 얼마 전 최일화 리포터 글을 관심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최 리포터는 그의 글에서, “.......남존여비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한이라고 하는 독특한 정서를 가슴에 품어야했던 쓰라린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어머니들은 강인한 모성으로 자식들을 낳아 길렀고 그런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마음속에 각별한 정서를 잉태시켰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 그 각별한 정서(?)의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올 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늦둥이 자녀를 둔 30대 후반에서 4, 50대 후반 엄마들이 자녀의 한글교육 등 선행학습 준비 외에 입학하는 아이의 기를 안 죽이려 주름제거와 지방이식 수술 등의 성형수술을 해야 할 지의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이라는 것이었다.
뉴스를 보는 순간, 그럼 교사들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 58세 되시는 기간 제 여선생님이 산가를 내신 선생님 반에 강사로 오셨다. 1학년 교실에 배정이 되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셨는데 어떤 아이가, “나는 할머니 선생님이 싫어요.” 하면서 책상위에 얼굴을 파묻고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인제 막 첫 아기를 출산하기 위하여 산가를 내신 선생님은 매우 젊으시고 아름다우신 선생님이셨다. 기간제 선생님께서는 교무실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계신 자리에서 태연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순간 선생님께서 얼마나 난감하시고 무력감을 느끼셨을까? 생각이 들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곧 되실 분이신데 1학년에 배정이 되셨다. 당시는 소위 치맛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절로 사투리에 나이가 좀 들어 보이시는 남자 선생님의 1학년 담임배정을 학부모들이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며칠 후 학년을 바꾸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지만 자녀라면 조금의 양보도 없는 냉혹한 현실 앞에 학교 측도 어찌할 수 없었다.
신학기가 되면 새로운 선생님이 배정이 된다. 아이들이 시업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담임선생님께서 젊으시니?, 연세가 드셨니?” 라고 대부분의 어머니들께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실 것이다. 아니 나 자신부터 그와 같은 물음을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집집마다 하나, 둘이니 얼마나 귀한 자녀들이겠는가? 일 년 동안 담임할 교사에 대해서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이다.
화장대 앞에 앉았다. 염색한지 3주 밖에 안 되었는데 정수리부분과 앞 이마둘레에 귀 앞 쪽에 흰 머리가 쏙쏙 돋아나고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크림을 찾아서 눈가 주름진 부분에 발라본다. 유달리 깔깔거리며 웃기를 잘 하니 양미간 사이 왜 이렇게 주름이 많은지......
신학기가 되면 새로 맞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로 늘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뉴스를 보고 거울 앞에 앉은 오늘은 왜 이렇게 우울한지.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기준을 정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한 사람의 경험과 피땀 흘린 과정의 노력 및 흔적은 문제되지 않고 숫자로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결과에 더 비중을 두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나 자신이 어린이들을 바라볼 때 이런 편견을 가지지는 않았던가? 또 학부모회의 때 말이 잘 통하는 젊은 학부모님들과 주로 대화를 나누며 제 2선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던 나이가 좀 드신 학부모님들을 교육에 열의가 없는 양 관심을 두지 않은 적은 없었는지 새삼 생각해 보는 오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