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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도서관은 몇몇 아이들의 공부방이 아니다!

최근에 교육부 일환으로 각급 학교 도서관 꾸미기가 한창이다. 기존에 있던 도서관을 최신식의 정보기기와 장서를 구비해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존의 있던 우리 초중고 학교의 도서관은 대부분이 책을 보관하는 장소이거나 혹은 학생들이 교과 공부를 하는 독서실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등학교로 올라 갈수록 도서관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대부분이 독서실 대용이거나 혹은 일명 특수반 아이들의 공부 장소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올해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도서관을 새롭게 정비하게 되었다. 예전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의자와 책상, 그리고 철 지난 옛날 책들만이 먼지가 쌓인 채 꽂혀 있었다.

공간 리모델링에서부터 장서 구입, 그리고 정보 기기 구입까지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데 무려 몇 개월 시간이 소요되었다.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짜내 완성시킨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공간과 장서를 구입하고 나서 문제는 발생했다. 학교 도서관의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사용 용도를 두고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도서관 담당자로서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도서관은 당연히 우리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교사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자 쉼터인데, 따로 도서관의 용도에 대해 회의를 하자고 하니 무슨 다른 의도가 있지 싶어 심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우리 도서관을 몇몇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뽑아 특수반 정독실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정독실 위주’의 공부 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적지 않이 혼란스러웠다. 또한 도서관 담당자로 몇 달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우리 모두의 공간을 몇몇 아이들의 정독실 위주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의 학습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사유공간으로 집중한다면 과연 도서관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지 의문입니다.”

“선생님의 의견도 물론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학습 능력의 상승과 그에 동반한 일류 대학에의 진학입니다. 이것 이외에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학습 능력 신장과 일류 대학에의 진학’이라는 말에 그만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학생의 대학 진학입니다. 학부모들도 모두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같이 시골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대학 진학이 특히 중요합니다. 학생 모집을 위해서도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곳이 몇몇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특히 이번 사업의 취지는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많은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인데, 단순히 입시 공부를 위한 장소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두고 선생님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만약에 아이들의 위한 공부방으로 도서관을 주로 사용한다면 여타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서 자유롭게 책을 보며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힘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도서관은 자유로운 사색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토론과 독서도 그들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물어 보십시오. 우리 아이들도 다 압니다. 대학진학을 빼고 뭐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물론 몇몇 아이들이 도서관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아이들 사이에 괴리감도 생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대학을 가느냐 가지 못하는 냐의 문제입니다.”

“좋은 대학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도서관을 자유롭게 많은 아이들이 사용하면서 즐거워 하는 풍경을 창출해 내는 것이 다 바람직한 모습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즐거워 하는 풍경을 창출해 낸다는 말씀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도서관은 노는 곳이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죠. 소설이나 만화 등을 보면 키득키득 노는 곳이라면 차라리 만화방이나 가는 것이 낫지 왜 도서관을 이용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정말로 도서관을 두고 이렇게 의견차가 심할 줄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처음 도서관을 꾸미면서 정말로 우리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교장 선생님의 완고한 의견 때문에 더 이상의 토론은 진행되기 어려울 듯싶었다. 일단은 몇몇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정독실의 기능도 함께 병행하기로 했다.

도서관은 우리 시대 교육의 중요한 장소로 뜻매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현장, 특히 고등학교로 올라 올수록 그 기능과 쓰임에 있어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도서관은 우리의 모든 아이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지난 시절에 몇몇 아이들만이 사용하는 그런 특정 공간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대학입시에 얽매여 여전히 도서관을 아이들의 정독실, 혹은 독서실 공간으로만 보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때론 당혹감을 떨쳐버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학 입시도 중요하고, 아이들의 입시 공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도서관 담당자로서 학교내에서만이라도 도서관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쉴 수 있고, 마음껏 그들의 생각의 자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입시라는 ‘대의명분’에 걸려 용도 변경되고만 도서관을 보면서 내내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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