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난 뒤, TV를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연일 계속 보도되고 있는 급식 파동 뉴스가 궁금하셨는지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우리 5남매를 공부시키면서 자식들 도시락을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싸 보낸 적이 거의 없으신 어머니께서 '위탁급식'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애비야, 저 말이 무슨 말이여. 요즘 애들은 도시락을 안 가지고 다니는 거여. 정말이지 좋은 세상이여. 그런데 누가 어쨌다는 거여.”
그래서 나는 어머니께서 궁금해 하고 계시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며 어머니는 못마땅하신 듯 여러 번 혀를 차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고픈 이야기를 내뱉으셨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재. 저 사람들은 자식을 안 키우남.”
사실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우리 5남매의 도시락을 싸면서 귀찮아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비록 반찬은 늘 김치였지만 도시락에는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김치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책가방 안에 있는 김치 국물이 쏟아져 그 냄새로 수업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냄새가 나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이유인즉,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내가 도시락 반찬으로 늘 김치만 싸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책가방을 여는 순간 새콤한 김치 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코를 막으며 내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문제는 뒷 정리였다. 결국 그 날은 점심까지 굶어가며 김치 국물에 젖은 가방을 비롯해서 교과서와 공책을 말리는데 온갖 고생을 다했다. 지금도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수업시간 공책에 필기한 내용들이 김치 국물로 지워져 그 내용을 다시 베끼는데 꼬박 잠을 새우기도 하였다. 하물며 김치 국물이 스며든 교과서는 개구리의 배처럼 불쑥 올라와 그 해 내내 고생을 하였다. 그 이후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를 싸 가지고 온 날은 가방을 자주 확인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늘 그랬지만.
그 날 저녁,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이야기를 하며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 이야기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그냥 웃으시기만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밥을 먹기 위해 반찬 통을 여는 순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반찬 통에는 평소 내가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햄과 소시지가 듬뿍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밥과 밥 사이에 놓인 계란프라이였다. 어머니는 계란프라이를 밥 위에 올려 놓으신 것이 아니라 중간에 넣어두신 것이었다. 지금에야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깜짝쇼를 준비하신 것이었다. 그제야 어젯밤 어머니가 대답대신 미소를 지으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데 있어 제일 불편한 때는 겨울철이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은 보온 도시락 하나 살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겨울철은 찬밥을 먹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교실에 있는 난로였다. 아침에 등교하여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으면 그나마 점심시간에는 미지근한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경쟁이 심해 늦장을 피우면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해서 아침 일찍 등교를 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한번은 난로 뚜껑 바로 위에 올려놓은 도시락밥을 태워 선생님께 혼이 난적도 있었다. 그리고 누룽지가 되어 버린 밥을 버리기 아까워 도시락에 물을 부어 먹으면 그 맛 또한 진미였다.
급식 파동이 일파만파(一波萬波) 퍼지고 있는 작금 그 옛날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 몰래 도시락을 까먹었던 생각과 어머니가 정성 들여 싸준 도시락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왜일까? 그래도 그때는 식중독으로 고생한 아이들은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