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에 교문을 들어서니 교실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교실마다 불이 켜져 있다고 하니 당직하신 오 주사님께서 아침 6시가 되기 전부터 문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린다고 하더랍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는 아침입니다.
어제 시험 첫날 오후, 무용을 가르치시는 선생님께서 제9회 울산무용제 팜플렛과 초대권 두 장을 가져 왔네요. 토요일 오후 7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해프닝’이라는 현대무용을 선보인다고 하면서요.
그리고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가져와 차를 마시면서 ‘해프닝’에 관한 대화를 잠시 나눴는데 무용선생님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습니다. 무용의 전문가라 방학 때만 되면 강사로 초빙되고 전국체전 때 팔선녀 지도, 개막식 무대공연 지도 등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이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팜플렛에 ‘해프닝’ 제목 하에 선생님의 사진과 함께 ‘안무 정○○’라고 되어 있어 안무가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춤동작을 만들고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정 선생님께서 직접 춤 내용을 구상하고 16명의 무용수들에게 역할분담을 하고 춤을 가르치고 하면서 약 두 달 동안 연습을 해 ‘해프닝’이라는 현대무용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자들인데 서울에서 현재 대학 다니고 있는 학생들, 무용학원 강사들로 16명의 무용수들이 시험을 앞두고서도 서울에서 울산에 왔다갔다하면서, 학원일도 뒤로한 채 한 자리에 모여 ‘울산춤포럼’이라는 무용단을 만들어서 준비를 했다고 하네요.
춤 내용은 허무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복잡한 삶을 일종의 ‘해프닝’으로 해석해 일상의 삶과 내면세계를 색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창작 ‘해프닝’은 각자의 삶 속에서 모양을 달리해 다가오는 슬픔, 고독, 갈등의 무거운 이미지를 때론 활기차고 때론 박력 넘치는 몸짓에 담아 현재에 얽매여 앞으로 내달리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에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든 거라네요. 주제 선정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꾸며지며 첫 번째는 ‘무의식, 무의미 일상의 풍경’, 두 번째는 ‘갈등의 태동’, 세 번째는 ‘갈등의 시간’, 마지막 네 번째는 ‘자각과 인식의 시간’ 주제로 춤사위를 펼치는데 정 선생님은 ‘울산의 현대무용을 전국에 알리고 싶은 욕심으로 작품을 통해 관객 스스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두 달 전 공연 때도 초청을 받았는데 사전 약속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 미안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사전 약속으로 참석치 못해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이번 기회에 참석해 현대무용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좀 넓히고 선생님에게 조금이라도 격려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정 선생님의 작품구상 능력이 이렇게 탁월한 줄 전에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번에 팜플렛 내용을 읽어보고 소설가나 극작가만이 할 수 있는 대본구상능력을 소유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무용을 사랑하는 열정, 작품 내용에 따라 어떤 때는 어둡고 밝은 춤을, 어떤 때는 빠르고 느린 춤을 구상하는 것이며, 무용수와 남자무용수의 몸짓향연이 군무 사이사이 펼쳐져 화합의 가능성을 살짝 맛볼 수 있도록 구상하는 능력이며, 내용 줄거리에 따라 음악을 편집하는 음악 편집능력까지 소유하고 있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네요.
정 선생님은 평소에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정적인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 시험성적으로 인해 갈등하는 학생, 부모 잃고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땀을 흘려가며 무용을 통해 힘을 실어주고 활기차고 박력 넘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고민과 고통과 슬픔과 갈등 속에 살아가는 기죽은 학생들에게 활기차고 진취적인 군무와 같이 쭉쭉 뻗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정 선생님이야말로 정말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쁘신 중에 있는데도 담임이 아니지만 야자감독에 함께 동참을 해 담임선생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학생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무용만 사랑하는 예술인이 아니라 무용 을 통해 우리의 위축된 삶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며 틈틈이 밤 10시까지 학생들의 야자감독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니 정말 존경할 만합니다. 우리학교에 이렇게 능력 있고 열정적인 무용선생님이 계신다는 게 우리학교의 보배요,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만 아니었다면 직접 ‘해프닝’의 현대무용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 정 선생님! 한 작품을 만드는데 엄청난 경비가 드는데도 자비를 들여가면서, 돈이 되지 않는데도 현대무용을 사랑하기에, 학생들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어둡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도록 하는 정 선생님!
하루 빨리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고 울산현대무용이 전국수준에 이를 만큼 한 차원 높여주시고 어둡고 힘들게 살아가는 학생들이 무용교육을 통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무용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어주셔야죠. 7월 1일의 현대무용 ‘해프닝’이 좋은 반응 얻기를 기대합니다. 정 선생님,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