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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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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비교를 통한 교육은 금물입니다

선생님, 오늘이 처서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입니다. 이제 애타게 기다리던 가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위는 이제 맥을 못 춥니다. 아직 한 달 가량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지만 한여름 더위만큼이야 되겠습니까?

우리학교는 오늘부터 근무조 선생님과 관계되는 선생님 말고는 모두가 쉬는 첫날입니다. 저도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로 4일간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값지게 보내려고 합니다. 어디 피서는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행 겸 아내와 함께 서울 다녀오려 합니다. 딸도 보고 볼일도 보고 바람도 쐬고 말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마음의 지옥을 만드는 비교의식’이란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서 자녀이든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학교든 어느 것도 교육을 위해 비교하는 일은 금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교가 학문을 연구하는 데는 필수입니다. 글을 쓰는 데도 비교 분석은 필수입니다. 각 종 분야에서 비교 분석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교육을 위한 비교는 절대 금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오늘 읽은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 내가 연구원으로 있던 회사는 미국의 북가주 실리콘 밸리에 소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인 한 분이 그 근처에 전자회사를 창업하여 크게 이름을 날렸다. 그때 그 회사에 한국인으로 창업 때부터 같이 일한 분이 있었다.

이분은 급성장하는 회사에서 큰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경리과에 들렀다가 급여 대장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최근에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미국인 직원이 자신보다 연봉을 천 불이나 더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뒤부터 직장생활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창업 때부터 뼈 빠지게 일해온 자신이 경력도 없는 젊은 미국인보다 천 불이나 적게 받고 일한다고 생각하자 사장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운함과 불만이 쌓여가던 중 그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가 가져다주는 비극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사에 만족하면서 근무 잘 하던 분이 왜 사표까지 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까? 바로 비교의식 때문 아닙니까? 자기에게 아무런 변화가 오지 않았는데도 자기에게 근무여건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비교 때문에 자기는 마음이 상했을 것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었을 것이고 직장에 대한 만족에서 불만으로 바뀌었을 것이고 비교한 사람인 미국인을 미워했을 것이고 시기했을 것이고 나아가 상사를 미워했을 것이고 따졌을 것이고 대판 싸움을 벌었을 것이고 나아가 직장을 그만두고 만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들도 같은 학교에 소속된 선생님들을 비교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과 비교하면 자기의 열심부족으로 인해 미워하게 되고 시기하게 됩니다. 학급관리 잘 하시는 선생님과 비교하면 자기의 못함을 인해 미워하게 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게 되면 되고 자기 나름대로 학급관리 잘 하시면 되지 비교는 왜 합니까? 동료 선생님을 비교하는 것은 직장생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학교와의 비교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학교 비교를 통해 도움이 되는 일도 있겠지만 저가 볼 때는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다른 학교와 비교한다는 말은 눈치 본다는 말입니다. 따라 한다는 말입니다. 소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 본받으려고 하기보다는 편한 것 본받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손해 보기보다 이익 보려고 합니다. 학생 생각보다 선생님 생각에 우선을 둡니다.

이웃학교는 방학을 얼마 하는데 우리는 어쩌나? 이웃학교는 자율학습 감독을 몇 명 하는데 우리는 어쩌나? 이웃학교는 보충수업 몇 시간 하는데 우리는 어쩌나? 이런 비교들의 출발이 모두 선생님 위주로 어떻게 하면 편할까 어떻게 유익이 될까 하는 생각을 갖고서 하기 때문에 이게 오히려 학교경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분위기만 흐리게 만듭니다.

학생들도 비교를 통한 교육은 금물입니다. 교육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자녀들도 비교를 통해 받는 상흔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지요. 비교하면 자녀들이 대번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싫어하는 것 경험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군 복무 중인 아들이 하나 있는데 누나인 딸과 함께 학교 다닐 때 아들에게 딸과 비교해서 공부하도록 자극을 준 일이 있습니다. 그때 아들은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더군요. ‘누나는 누나고 나는 나다’ 하면서요.

지나고 보니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그게 아들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자극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상처만 남겨 두고 말았습니다. 아들에게 얼마나 비교로 인한 상흔을 남겼을까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그때 좀 더 많은 책들을 통해 연수를 통해 깨달음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비교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비교해서 교육하면 안 되듯이 학생들을 비교해서 교육해서도 안 됩니다. 선생님끼리도 비교하면 안 됩니다. 다른 학교와도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비교가 평생 행복을 빼앗고 불행을 초래하게 만듭니다. 비교가 비교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질투하게 만듭니다. 잘 친한 사이가 서먹서먹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비교로 인한 상흔은 발자국을 남긴 시멘바닥처럼 상흔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남기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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