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원서 접수 마감일 아침부터 연구부장과 3학년 부장선생님의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각반 담임선생님의 철저한 점검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없애기 위하여 접수 전에 최종 확인 작업을 하는 연구부장의 얼굴이 진지하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였다. 올해 졸업한 한 제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심 반가움에 전화를 받자마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래, 대학생활은 잘 하고 있니?" "선생님, 저 학교 휴학하고 재수하고 있어요."
"재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니? 그 과는 네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니?" "그런데 반 학기 다녀보니 도저히 적응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다시 수능시험을 보려고요. 수능원서 마감 날짜가 언제까지 알려주세요."
학교를 잘 다니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녀석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원서마감일인 오늘 전화를 하여 원서 마감 날짜가 언제인지 물어보는 녀석의 말에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을 잃었다.
"OO아, 그런데 어떻게 하니? 오늘이 원서마감인데…." "네? 정말이에요?"
녀석은 믿어지지가 않는 듯 계속해서 물었다. 그리고 원서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재차 물었다. 제자에게 그 방법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못할 녀석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녀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연구부장에게 그 방법을 물어 보았다. 지금이라도 학교에 오면 원서를 쓸 수 있다는 연구부장의 말을 듣고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다급한 듯 신호음이 한번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어떻게 되었어요? 원서 쓸 수 있어요?" "그래, 지금 학교에 나올 수 있니?"
그런데 녀석은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재차 물어 보았다.
"지금 학교에 나올 수 있니? OO야." "선생님, 그게∼, 말입니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내년에 원서 쓰겠습니다. 그리고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녀석은 이곳에 있지도 않았으며 원서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담임이었던 내가 원서를 써 줄 수도 있었지만 원서에 부착해야 할 사진(2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전화를 하고 난 뒤, 일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녀석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들을 대학에 합격시켜 졸업만 시키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했던 자신의 안일함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사실 고3 담임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점도 많지만 대학과 학과 적성이 맞지 않아 대학을 중도에 포기했다는 제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는 속상하기도 하다. 마치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양 아이들에게 힘주어 이야기했던 지난날의 나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성적 때문에 고민을 하는 아이들에게 대학에 입학을 하기만 하면 그 고민은 행복으로 바뀔 것이라고 위안을 했던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나의 이론이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안 제자들은 그 모든 것을 위선으로 받아들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새내기 대학 생활을 한지 한 학기가 지난 지금 나름대로 대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대학과 학과 적성이 맞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으리라.
그래서 일까? 매년 수능원서 접수 때가 되면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해 다시 수능시험을 보겠다며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면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학과를 선택하는데 있어 아이들의 적성을 고려한 입시지도가 이루어져 아이들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방황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 후,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든 선생님들의 바램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내일은 졸업한 모든 아이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