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스승께 회초리를 한 아름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구태여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의 체벌은 아동 교육상 어느 정도는 인정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변하여 이제는 교사가 아동에게 매 한 대 들면 불법행위로 간주되는 ‘체벌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착잡한 마음이 든다.
오래 전에 '유태인의 교육법'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들은 철이 든 애들에게는 훈계를 하고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어린애들에게는 해야 될 일들을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매로서 다스린다고 했다. 본인의 경우도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매를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된 지금은 거의 때리지 않는다. 잘못한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로 해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네들의 교육법에도 일리가 있다고 느끼면서 실제로 6학년을 담임했던 몇 년 전에는 학년 초부터 벌점제를 만들었다. 떠들거나 주의 산만으로 인해 한 번 이름이 불리는 것을 1점으로 해서 하루에 3점이 되었을 때에는 반성문을 써야 했다. 6학년의 아이들에게는 지겨운 글짓기보다는 차라리 매 한 대를 선호하는 아이도 있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담임으로서는 때리지 않아 좋고 애들은 반성문 쓰기 싫어 함부로 굴지 않았다. 이 얼마나 행복한 한 해였을까! 그래서 그 해는 매 한 번 들지 않고도 다른 반에 비해 수업태도가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 내심 성공을 기뻐했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는 2학년을 맡았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힘주어 벌점제를 역설했지만 그것이 통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반성은 고사하고 떠들고 재미있어 하는 표정에서 난 며칠 만에 손을 들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살맛나는 우리 교실을 만들어 볼까에 대한….
그 순간 다시 한 번 옛날에 읽었던 탈무드의 교육법이 생각났던 것이다. 말로써 알아듣지 못하는 연령의 아이들에게는 육체적 아픔으로 바른 길을 인도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같은 벌점제에서 약간을 변형해 3점이 되면 경고를, 5점이 되면 손바닥을 1대 맞는 것으로 정했다. 과연 2학년의 아이들에게는 훨씬 효과가 있음을 입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역과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해의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이 효과로운 방법이 올바른 수업 분위기 형성에 많은 보탬이 된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 교사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연령이나 성숙도에 따라 처방을 달리 하면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당근과 채찍은 공존한다. 채찍이 있음으로 당근이 더욱 값진 것이고 꾸중이 있어서 칭찬이 더욱 좋은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 있어서 삶이 더욱 보람 있는 것과 같이 이치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반쪽인 체벌을 금지한다는 방침에서 아예 법제화가 추진되면 이제 체벌하는 교사는 범법자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무리 교사의 체통과 권위는 사라진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제는 무장해제 당하고 전쟁터에 내몰리는 기분이다. 학교에서의 체벌은 전쟁에서는 무기요 병원에서는 처방이고 보약에 해당된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된다. 사전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왜 예방 안 했냐고 따지고 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선생님은 우리를 절대 못 때린다’와 ‘말을 안 들으면 맞을 수도 있다’라는 것은 어쩌면 결과는 같을 수 있어도 분명 차이가 있다.
물론 체벌 없이 교육을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우리 교사들이 더욱 환영할 일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아이들과 씨름할 필요 없이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자 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행복한 고민과 창의력 계발 운운 하면서 그렇게 수업을 하면서 말 안 듣고 주의 산만한 아이는 학부모 호출하는 그런 나라가 부럽다.
부모가 자식을 때려도 고발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당연히 교사가 체벌을 안 한다. 하지만 그 나라는 체벌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차라리 그네들처럼 체벌하지 않고 수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는 학부모를 호출한다든지 카운슬러에게 가서 훈계를 받게 하거나 교실 밖으로 퇴장시키는 방법이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화 낼 일도 없이 우리도 품위 있게 수업에 열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우수한 집단이라도 20%는 부진요인이 생긴다는데 하물며 영재와 정신박약아까지 섞여있는 대한민국의 초등학교에서 그것도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이성에 맡기고 그저 ‘잘 하자, 잘 해 보자’ 하는 우아한 말로서 40명의 아이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럴 자신이 있으면 한 달만 내 반을 빌려 드리고 싶다. 그래서 비결을 배우고 싶다.
서둘러 법제화해야 될 것은 주의 산만한 아동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행․재정적인 지원이 먼저 따라야 된다고 본다. 윗물은 가만히 두고 아랫물이 흐리다고 사회나 언론에서 난리를 피우는 것은 비단 교육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다. 윗물 관리만 잘 되면 가만히 두어도 아랫물은 저절로 정화됨을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