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초등학교 교사이다. 오늘은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누가 계획하여 준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내 마음을 딱 알아맞히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교육대학을 지원하고 학장님 앞에서 면접했던 일이 기억났다. 학장님이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편지쓰기’라고 했다. 그랬더니 학장님께서는 ‘그래요? 나는 편지받기가 취미인데…’ 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방침으로 작은 문집을 만들었었고 그것을 계기로 일기를 썼으며 이후에도 친구들이랑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그 편지를 보고 일일이 스크랩해 놓았다. 그리고는 얼마 전 집들이하면서 친구들과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남편이 그 파일들을 꺼내놓았다. 스크랩 사실을 몰랐던 나도, 깜짝 놀라는 친구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몇 십 년 전의 일들로 한참동안 추억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20대의 친구들이 쓴 손 편지는 정작 자기가 쓴 내용을 보고도 기억을 못 했으며 앙증맞게 그림까지 그려 넣은 것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나는 평소 두 아들에게 기념할 날들이 오면 편지를 쓰라고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는 편지를 좋아한
사랑하는 우리 엄마~ 봄볕이 따사롭게 감싸는 계절의 여왕 5월, 대구에 계시는 우리 엄마도 바깥 나들이를 하시겠구나 싶어 흐뭇하고 더워져서 짧은 옷을 입게 되면 우리 엄마 춥지 않겠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져요. 엄마, 잘 지내시죠? 간병인 아줌마도 엄마랑 친구처럼 말동무 하시면서요. 나이 오십을 넘었는데 아직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어 저는 행복해요. 이 행복이 언제까지일는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계시면 계셔서 감사하고 언젠가 그 날이 오더라도 그저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으니까요. 복 많은 엄마 덕분에 우리 형제들 큰 탈없이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할 뿐인걸요. 어버이날이 다가와 우리 반 꼬맹이들 부모님께 카네이션 만들기 준비 하면서 저도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아 엄마를 생각해 보았어요. 나이 듦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불편하고 게운치가 않을 텐데 겪어보지 않은 저는 얼마나 힘드실까 싶어도 생각뿐 해 드릴 게 없으니 그것이 속상하고 죄송하네요. 막내가 엄마를 모시니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올케와 조카들 두루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아는 선생님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 들어가는데도 집에 가면 항상 머
작은 올케에게. 주부들이 겪는 명절 증후군. 나도 여기에서 벗어난 지 몇 년 안 됐지만 올케 고생 많았어. 그래도 자네는 복 받을 거야. 쉽지 않은 시부모 모시는 일을 스스로 자처하겠다는 말을 듣고 요즘 사람답지 않는 자네가 미더웠으니까. 더구나 솜씨 있는 자네가 한 음식 잘 먹고 예쁘게 꾸며놓고 사는 모습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올 설에 여기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이훈 아빠가 불편한 몸으로 왔는데 모두들 반갑게 맞아 주어서 더욱 고맙기도 하고… 맞이도 아니면서 맞역할을 하느라 고생하는 자네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힘드는 동생을 보면서도 사람 사는 것이 고행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리고 엄마. 예전에 작은 아버지의 편지글 중에 ‘연로하신 할아버지 많이 위로해 드리고..’라는 문구를 봤는데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었어. 그런데 엄마를 보니 늙는다는 것이 서러운 일임을 좀 더 가까이에서 알게 되었어. 아무도 늙음과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마치 자기는 안 늙을 줄로, 나는 영원할 걸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어리석은 건지 현명한 건지. 하물며 직접 모시고 사느라 허덕이는 자네는 더욱
계절의 여왕 5월이건만 교육계는 편치 않다. 학교폭력과 이에 연관된 사건으로 연일 시끄럽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엇나가도 한참 엇나간 듯함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는 먼저 학생들의 정서가 황폐해진 것이 한몫을 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야 한다. 부모가 맞벌이라도 되면 밤까지 학원을 전전한다. 생활이 팍팍해지니 또래집단과 공감하고 소통할 여유가 없다. 그러니 학교에 오면 장난으로 스트레스를 풀려 한다. 그런데 그 장난에서 배려와 나눔은 찾아볼 수 없고 짜증만 나니 싸움이 일어나고 시비가 붙는다. 학부모들까지 이것을 중재하지 못하고 더 큰 다툼이 되고 이를 해결하느라 학교가 시끄럽게 되고 만다. 학교폭력이 커지면서 그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가고 있다. 정신적, 인격적 미성숙 단계인 학생들에게 책임과 의무는 없고 왜곡된 권리만으로 불량한 행동을 일삼는다. 자기보다 물리적으로 약한 아이들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몸싸움을 하는 끝없는 괴롭힘이 일어난다. 바쁘다는 핑계로 학부모도 자녀의 심리를 파악할 겨를이 없고 점수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의 감성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조금만 힘들어도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옛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 뿐 아니다. 요즘에는 내가 믿었던 것도 변한다는 생각이 부쩍 들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그 때 나의 판단은 어른들과 다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니가 웃으며 조금만 지나면 그때는 어리고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을 일기장에 기록해 두면서 확인해 보고자 했으며 '지금의 내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나중에 그 생각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위해 맞선을 보면서 그런 일은 또 일어났다. 처음부터 마음이 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만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결별을 말하려고 나간 다음 번 만남에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혼을 하여 두 아들을 두면서 지금껏 후회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또 있었다. 평소 날씬하다는 핑계로 좀처럼 운동을 않는 나는 두 팔을 90도로 해서 내저으며 얼굴을 감싸고 걷는 아줌마들이 못마땅했다. 얼마나 잘 살려고 저렇게 흉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
영광을 거머쥔 교장선생님께! 먼저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많은 퇴임이 있어왔지만 그 소임을 다하여 물러나는 정년퇴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의 교장선생님이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입니다. 재학 시절을 포함하여 반백년 이상의 세월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보내다 떠나시는 감회야 어찌 말로 다 할수 있겠습니까? ○○초등학교의 초임발령을 시작으로 젊음과 열정을 다 바치시다, 이 곳 ○○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교육에 올인한 세월은 참으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많은 직업 중에 교직을 선택하여, 가르치며 또한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지난 날들은 분명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이제 공직에서의 미련과 회한과 아쉬움은 훌훌 털어버리시고 진정 자유인으로서의 일상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릴 적 부모의존시대와 젊은 날의 가족책임시대를 지나 이제 진정 자기충실시대를 맞아 부담없는 여유와, 자신만을 위해 미뤄뒀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음이 진정부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을 가장 아름다운 날들로 승화시켜 기쁨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은퇴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지 멈춘다는 의
본인은 시골에 있는 면단위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다. 최근 국가권인위원회에서 학교 촌지 근절 방안으로 학교 현장으로 암행 감찰반을 보내고 있다고 뉴스를 들었다. 우리 학교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뉴스를 듣고 나니 서글퍼졌다. 교사가 미성년자인 학생 인격을 존중하는 것도 이보다는 낫다. 최근 전직 대통령의 뇌물 수수와 연관이 되면서 몇 만원의 촌지에 중징계라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그 분들의 뇌물은 어떻게 처벌해야 공평하고 일관성 있는 걸까? 이럴 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라는 평범한 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아랫물이 흐리다고 아무리 깨끗이 해도 위로부터 탁한 물이 내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윗물을 맑게 하면 아랫물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혹 아랫물 자체에서 더러워질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청소하기란 쉽다. 그 곳만 하면 되니까. 이처럼 간단한 원리를 왜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까?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랫쪽의 작은 부분만 청소하기에 당장은 쉬워서일까? 아랫물은 쉽게 내맘대로 처리하게 간편해서일까? 윗물부터 청소하기에 역부족이어서일까?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꿰고 할 수 없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후딱 해치우기
‘생각만 다 하면 생각대로 ♬...’ 어느 날 문득 광고의 노랫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신기하게도 생각은 무궁무진해서 생각을 자꾸 하다보면 무엇이든 방법이 나오고 해결책이 나오는 마술과 같음을 말이다. 그래서 ‘아~ 아이디어란 생각의 결실로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바쁘다. 어려운 경기로 맞벌이가 대안이라는 현실에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놀이방으로 내몰리고 더 자라면 영재교육이니 선행학습이니 하면서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무엇을 하도록 요구받는다. 이런 와중에 창의력은 고사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허겁지겁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창의력만이 살아남는다는 21세기의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의 초등학교 아이들은 생각이 단순화되어 가고 창의력은 무디어져 가고 있다.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질문을 하고는 3초를 못 기다린다고 한다. 대답하기 위한 생각의 여유를 주지도 않고 다그치니 무슨 창의력이니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겠는가! 목욕탕이나 화장실 혹은 산책을 하거나 잠자리에서 아이디어나 음감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요즘에는 좋은 대학,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에서부터 특목고 반이니 영재반이니 뽑아서 가르치는 학원과 각종 학습지가 수없이 많다. 엄마들의 지극한 모성애와 맞물려 아이들의 동심은 멍들고 사고력과 이해력, 창의력마저 깡그리 무시된 채 숫자놀음에만 연연하다 정작 중요한 그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단순한 계산 문제는 잘 하는 아이들도 조금만 틀어 놓은 응용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고 또 문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계산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답에만 집착하고 있다. 예를 들어 2학년 2학기 수학 익힘책 36쪽에 있는 문제를 보자. ‘영호는 영수와 함께 도토리를 주웠습니다. 영수는 130개를 주웠고 영호는 영수보다 27개를 더 주웠습니다. 두 사람이 주운 도토리는 모두 몇 개입니까?’라는 문제에서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130+27을 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물론 계산은 일사천리다. 그러고는 더 이상 들여다볼 생각을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첫째 문제를 자세히 읽지 않고 둘째 그 문제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반에서 이 문제를 한 번에 맞힌 아
영광을 거머쥔 선생님께!! 먼저 자랑스런 명예퇴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무어라 할 수 없는 감격과 감상에 젖어드는 오늘입니다. 강산은 수없이 변했지만 대한민국 교사로서의 소신과 열정은 변함없이 이어졌음에 감탄하며 다가올 제 2의 인생 출발점에서 얼마나 기대와 설렘이 많겠습니까? 저는 우리 인생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봤습니다. 먼저,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기까지의 부모 의존 시대, 다음은 가족을 이루어 우리에게 주어진 고유 업무를 수행하며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여 젊음을 불태우는 가족 책임 시대, 마지막은 지금까지 가꾸어온 결실을 누리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로지 나만을 위하며 살 수 있는 자기 충실의 시대로 삼분했습니다. 인생 90으로 봤을 때(그 이상이라면 그건 덤^^) 대략 1/3씩이 여기에 각각 해당되겠지요. 그러면 남아있는 1/3의 수많은 날들을 그냥 여생을 즐기자고만 하신다면 너무 아까운 고급인력의 손실이 아닐런지요? 분명 뭔가를 계획하시어 실행에 옮겨 그래서 더욱 빛날 모범적인 전직교사로서의 품위와 인격을 닦아나가시리라 믿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은퇴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지 멈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교감 선생
엄마! 따뜻한 봄 날씨가 한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오늘 아침이에요. 매일 다섯 시에 알람을 해 놓고는 꾸물거리다 신문을 보는 것으로 저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신문을 그리도 좋아하셔서 돌아가실 즈음까지 신문을 읽으시려고 일어나 앉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노후도 아버지와 비슷하리란 생각도 해 봤어요. 그리고는 운동을 하고 샤워를 마치고 집에 오면 이제 출근 준비를 하게 된답니다. 미리 타 둔 생식을 후딱 먹고는 서둘러 집을 나서는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상쾌한 기분에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면서 학교로 향하는데 오늘은 문득 엄마 생각이 났어요. 내일은 어버이날인데 평소 같으면 엄마 아버지가 함께 계시니 두 분이 오순도순 계시리라 믿어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혼자 계시는 엄마 생각과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자꾸 슬퍼졌어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마음 속으로만 그릴 수 있는 아버지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지난 겨울에 있었던 기억을 더듬었어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그 때의 모습을 애써 떠올리며 이제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해 보기도 했답니다. 오늘은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께
영어 교사의 자격 얼마 전 신문의 사설 [영어로 영어 가르칠 사람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에서 '꼭 사범대를 나오고 교직 과정을 밟아야 교사를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라는 문구를 보고 할 말이 생겼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영어 교육을 강화하여 고등학교만 나오면 일상 회화가 가능하도록 한다 하여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주시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사교육비와 기러기 아빠도 줄어들어 경제적이면서 가정의 평화가 온다고 해서이다. 굳이 외국에 나가 공부하지 않아도 회화가 가능하다니 꿈같은 얘기다. 지금까지 원어민 교사 1명을 채용하기 위해 연간 1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어학연수를 시키면 정년 때까지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간단하고도 경제원칙에 부합한 답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이것을 못하고 있었다. 이제 이것을 정부 차원에서 계획한다니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꼭 교대와 사대를 나오지 않고 구태여 교직과정을 밟지 않고도 교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작 교대 사대를 만들지 않고 일반 대학을 나온 자에게 발령을 내지 못한 것을 잘못한 일이라고 지적이라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올해 여든 다섯인 친정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지병으로 당뇨와 협심증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대장암 수술과 어렵다던 항암치료도 받으셨는데 규칙적인 검사를 꾸준히 하신 덕인지 완치판정을 받으셨다. 칸트를 존경한다는 아버지는 정확한 시간생활을 하셨고 담당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늘 칭찬을 받는다고 자랑하셨다. 그리고 허황된 명분을 쫒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판단으로 세상을 살라 하시며 ‘중단하는 자는 성공하지 못하고 성공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인용하시곤 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오빠에게 제문(祭文) 작성을 가르치셨고, 어머니 손을 잡고 은행에 가서 여러 가지를 일러주셨단다. 종가의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사회생활을 모르셨고 바깥일은 거의 당신 혼자서 하셨는데 하나씩 인계를 하신 것이다. 그 때 이미 아버지는 가실 날을 예견하셨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말부터는 차츰 거동을 못하시더니 한 달쯤 후에는 혈당과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가까운 노인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처치를 한 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집으로 모시는 것이 좋다 하여 퇴원과 동시에 간병인과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매일 신생아처럼 잠만
오랜 기간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골과 도시를 번갈아 근무해 보았다. 어느 곳이 좋다기보다 차이는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환경에 따라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리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 보았다. 대체로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아파트 숲에서 생활하는 도시의 아이들은 단정하고 깔끔하며 개인주의적 성향을 띤다. 그리고 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공부도 많이 하고 학력도 우수하다. 친구 관계 또한 부모들이 인위적으로 형성해 주려고 노력도 하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일기도 열심히 쓰며 바른 인성과 옳은 행동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친구들과 놀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풍부한 정서 생활과 유연한 사고를 할 여유가 적을 수 있다는 우려가 된다. 몸이 바쁘면 머리가 느려져 창의력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시골 아이들은 문화적인 혜택이 적은 편이며 살기가 바쁘다는 핑게로 부모의 관심도가 뜸한 경우도 있다. 또 학원에서의 다양한 기능습득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러나 과외 활동이 적어 시간에 덜 쫓기니 놀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더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고가 자유롭고 친구
“따르르릉~~” “안녕하세요? ○○○입니다. 아시겠어요?” 갑자기 나의 목소리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떨려왔다. 이게 얼마 만인가? 대학 때 몇 번 만나다가 멀어진 지 삼십 년이 지나 그의 이름 석 자도 지워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늘 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다. 우리 동네에는 나처럼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예비고사란 것을 치르고 발표를 며칠 앞 둔 어느 날 그 남자애가 나에게 슬그머니 쪽지를 내밀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 입구에 잠깐 나오세요” 나는 얼떨결에 그를 따라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그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같이 공부하자고 했다. 우리는 아침에 함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에 만나서 집으로 가곤 했다. 그 때만 하여도 남녀가 분리된 도서관이어서 나는 자리에 앉아 내내 가슴을 설레며 그를 생각하면서 시계만 들여다보곤 하였다. 입시가 끝나고 우린 사진을 교환하면서 평생 간직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누나와 형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인사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