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뒤, 오랜만에 교정을 산책하였다. 어느새 교정 여기저기의 나뭇잎들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늘 교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업무와 교재연구로 보낸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 한철 푸름을 뽐내던 나뭇잎들이 생활에 찌든 나를 기쁘게 해주려는 듯 곱게 옷단장을 하고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떨어진 나뭇잎을 밟으며 책갈피에 끼울 나뭇잎 몇 장을 주웠다. 한편으로 뒹구는 낙엽 위로 학교를 떠난 아이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그려졌다.
어느 집 마당에 서있는 앙상한 가지를 한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겨 둔 감 몇 개가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그건 각박한 이 시대에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의 마지막 정(情)으로 여겨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흰 구름 사이로 가을 햇살이 내 이마를 비추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그 햇살은 따갑지가 않았다. 오히려 가을 햇살은 포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건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풍요로움을 햇살이 담고 있기 때문이니라.
이제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의 손길이 바빠지듯 다음 달(2006년 11월 16일)에 치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마음 또한 분주하기만 하다. 늘 시간에 쫓기며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이 가을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궁금해졌다.
잠시나마 아이들에게 가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수업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시 한편을 낭송하게 하였다. 아이들은 각기 개성을 살려 평소 좋아하는 시 한편을 암송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 몇 편을 알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아이들이 제일 많이 암송하고 있는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었고 그 다음으로 윤동주의 '서시'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순이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주는 가을처럼 아무쪼록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목표를 향해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풍요로움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미덕을 배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처럼 이 가을에 우리 아이들이 가을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