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동사무소 앞에 ‘가곡의 밤’플랜카드 붙은 것 보셨어요?”
“그래, 너도 보았구나. 참 좋은 음악회인 것 같으니 토요일 오후 저녁 일찍 먹고 우리 가족 모두 음악회에 가도록 하자꾸나.”
며칠 전 딸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이다.
오늘이 바로 음악회가 있는 날. 리포터가 이 날을 기다렸던 것은 특별한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현수막에 있는 문구로 보아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음악회였기 때문이었다. 리포터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그 작은 ** 2동 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가곡의 밤’ 음악회가 열린다니 어떤 음악회일까? 무척 궁금하였었다.
약 15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었고 경직되고 조용한 음악회 분위기가 아닌 깔깔거리는 아이들 소리와 동네에서 만난 이웃과의 정겨운 대화들로 연주회장은 조금 소란하였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어떤 수더분하게 생기신 분이 단상에 올라 가셔서 오늘 음악회를 열게 된 취지를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 ‘아, 그랬었구나.’ 하며 궁금증이 풀렸다.
곧 이어 약 20명쯤 되어 보이는 합창단원이 단상에 올라왔다. 노란티셔츠를 입고 김동환 곡‘그리운 마음’이란 합창을 하였는데 연령층이 매우 다양하였다. 20대에서 6, 70대까지 있어보였다. 처음 단상에 올라오셔서 오늘 음악회의 취지를 말씀하셨던 그 분이 지휘를 하셨는데 그 분이 바로 **2동 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가곡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는 강사님이셨다. 처음 순서를 합창으로 여는 것은 합창을 하고 계신 그 분들이 바로 가곡교실에서 가곡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이며 또 그 분들이 한명씩 나와서 독창으로 가곡을 부르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합창을 듣고 프로그램의 순서를 보니 곡의 수준이 보통 높은 것이 아니어서 과연 어떤 독창이 나올까 염려되는 바 없지 않았다. 드디어 독창순서가 이어졌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바른 발성으로 노래하려고 애쓰는 흔적들이 보였다. 조금 전 티셔츠를 입고 합창할 때와는 달리 독창을 할 때는 모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들도 예쁘게 드레스를 맞추어 입으셨다. 순서가 끝날 때마다 환호성과 함께 손바닥이 닳도록 박수를 쳤다. 그 분들이 순수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나오는 분들마다 사진을 찍었다.
순서가 반 쯤 지났을 때 찬조출연이 이어졌는데 서울예술종합원의 손성래 교수님이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르자 마이크를 대지 않았는데도 배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장내를 뒤흔드는 웅장한 목소리에 온 청중은 탄복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었다. 또 김천옥 강사님과 함께 파티의 흥겨움을 함께하자고 제안하면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와 함께 부르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축배의 노래’를 이중창으로 부르니 음악회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하였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나는 살고 싶어라’를 부르신 성악가 박희성 님, ‘수선화’를 부르신 성악가 안기은 님의 수준 높은 곡도 들을 수 있었다. 플룻 3중주의 찬조출연도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였다.
마지막 순서로 '산‘이라는 요들송을 합창으로 들려주었다. 피아노 플룻, 기타 등의 악기가 함께 동원되고 청중과 단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박수를 치면서 불렀다. 가곡을 듣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1시간 30분이 소요된 음악회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여러 가곡을 들으니 가사 하나하나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질 수가 없다. 이태리 가곡, 오페라, 한국가곡이 모두 무대에 올려졌다.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가곡들을 잊고 살았다니....
가곡의 밤 순서가 모두 끝나고 김천옥 강사님을 만났다. 노래가 너무 좋아 만학을 했다고 말하면서 “아마 전국에서 이렇게 다양한 나이,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가곡교실을 운영하는 문화센터는 이 곳밖에 없을 거예요. 전공한 사람만이 음악을 하는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초적인 발성법부터 시작한다면 가곡도 잘 부를 수 있게 된다”라고 하시며 지역사회에 건전한 문화육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 일을 시작하셨다고 말씀 하셨다.
올해로 5회를 맞는 가곡의 밤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곡교실 수강생들이 독창을 하다가 찬조출연으로 성악가들이 나와서 노래하니 옆에 앉아계시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저 정도 실력은 되어야지. 노래를 아무나 부르는 줄 아나?” 라고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 우리는 그토록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서 자신들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며 틈틈이 애써 노력한 결과를 선보인 그들에게 힘써 박수를 쳐주지 못하는가?’그 분들을 무대에 나가게 한 그 용기에 우리는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어야 한다. 그리고 힘겨운 인생의 무대 가운에 그토록 정성을 다해 순간을 사랑하며 가슴 넓혀 숨 크게 쉬며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는 그 분들을 보는 가족은 그 분들을 통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에너지를 삶의 길목 길목에서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