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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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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3)

울산교육연수원에서의 생활은 규칙적일 수밖에 없다. 숙소마다 스피커시설이 다 되어 있어 수련생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맡은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아침에는 언제나 오전 6시 기상을 하게 된다.

오전 6시가 되면 행진곡이 울림과 동시에 사감의 수련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일째 기상시간입니다 신속한 동작으로 생활실을 정리정돈하고 중앙현관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수련이 시작된다. 엄숙하고 장엄한 국기에 반주에 맞추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후 울산교육연수원만이 자랑하는 넓고 푸른 바다를 향해 외친다. “야호, 울산○고 파이팅, 아버지, 어머니”하고. 외치며 학교사랑, 부모사랑을 하게 한다.

연수원 원훈인 “푸른 꿈 갖자, 무한한 창의력을 기르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라고 복창한 후 이어 우리의 다짐을 이렇게 한다. ‘우리는/Ⅰ. 자신을 바르게 알고, 겸허하게 행동한다./Ⅰ. 이웃에 봉사하고,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한다./Ⅰ.진취적 기상으로 밝은 미래를 창조한다.’ 그리고 난 다음 부모, 형제, 친척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묵념을 한 후 국민체조를 한다. 그 후 운동장 세 바퀴를 돈 후 청소, 세면, 자기 관리에 들어간다.

나는 자기 관리 시간에 맞추어 연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두 길로 난 울기공원 속으로 산책한다. 이 코스를 산책하는 날이 많지만 보통 때와는 달리 3월 말이라 그런지 유달리 시야에 들어오는 것과 귀에 맴도는 소리가 많아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면 메모를 한다.

그 날 특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연수원 양쪽 입구에 늘어서 있는 소나무 숲에는 곧고 길게 자란 소나무만이 아니다. 왜소하게만 보인 벚나무를 비롯한 이름 모를 잡나무들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고, 벚나무는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 미안한 듯 푸른 잎을 내며 자기만이 지진 아름다운 꽃을 선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두 갈래 길이 나 있는데 한 길은 다듬어진 길이고, 다른 한길은 자연미가 풍기는 길이다. 갈 땐 다듬어진 길을 걸었고, 올 땐 자연미가 넘치는 길을 걸었다. 봄을 알리듯 개나리가 줄지어 웃으면서 반기며 벚꽃이 환영준비를 한다. 겨울을 이긴 동백꽃은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듯 살며시 입술을 머금고 손짓한다. 급하다 못해 지쳐 버린 목련은 제 색을 잃고 힘없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또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지만 붉다 못해 흰 자취를 남긴 채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이것 말고 또 있다. 상처 입은 나무와 누군가에 의해 톱으로 잘려나간 흔적이 넷이 너무나 선명하다. 그 잘려진 나무 옆으로 조그마하고 가느다란 새끼 가지가 둘이 나서 푸른 자태를 뽐내며 손님맞이에 끼어든 것이 대견스럽다. 비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기 할 일을 다 한 상처 입은 나무는 조그만 상처도 치료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나를 꾸짖으면서 맞이하는 것 같다. 이미 부려져 죽은 가지도 모양내는 데 한 몫 했으며, 뿌리째 뽑힌 고목이 드러누워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이름 모를 잡초들은 한 구석 자리를 잡고서 방석을 줄줄이 깔고 있었다.

한편 내 귀에 들려오는 건 나무 숲 속의 각가지 새들의 다양한 리듬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차랑차랑하고 맑고 고운 소리가 들려 왔다. 찌지지∨지, 삐이∨삐,.빽∨빽, 박자도 다르고 리듬도 분명히 달랐다. 가다가 멈춰서 나뭇가지 속을 쳐다보니 손바닥 크기보다 작은 새들이 열심히 노래하고 있다. 조금만 더 지나가면 좀 더 큰 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빽-, 뻐국.... 이제는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꾁-꾁 . 멀리서는 부엉이 소리가 들린다. 딴딴∨따따다, 따따단,딴따다, 계속 반복해서 들린다.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고유악기의 소기는 이들을 본뜸이 틀림없다. 꽹과리는 작은 새소리에서, 북은 중간 새소리에서, 장구는 부엉이에서, 징은 까마귀에서 얻은 소리로구나! 특히 부엉이의 딴딴∨따따다, 따따단,딴따다의 반복해서 들리는 리듬은 오방진의 가락과 너무 흡사하구나! 어디서 오방진과 같은 신나는 가락을 만들었을까 했는데 역시 부엉이가 가르쳐 주었구나!

새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모음은 완벽한 하아모니다.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의 나무들이 그들의 무대고, 크고 작은 갖가지 새들은 합창 단원이며, 산책하러 온 분들은 청중이다. 앞서서 지휘하는 자 없어도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아모니를 엮어낸다. 무리하게 소리 내지도 않으며 질서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 않고 소리 낼 때 소리 낸다. 자기 소리만 내지 남의 소리 흉내도 안 낸다. 들어주고 보아주는 청중도 그렇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좌석도 고정하지 않는다. 박수도 보내고 싶으면 보내고 가다가도 듣고 싶으면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함께 산책하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에게 눈길도 준다. 새들이 엮어내는 합창곡이야말로 음악을 전공한 지휘자가 엮어낸 합작품의 원형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제○기 입교식 때 원장님께서 수련생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학교에서 가까이 지내지 않던 친구들도 한 생활실에서 한 연수원에 어울려 생활할 텐데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더불어 사는 공통체 의식을 가져보자”.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들려주는 것이 분명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모습이다. 전혀 어울릴 수 없지만 소나무 숲 속에 끼여 있는 작은 벚나무가 싱싱한 푸른 잎과 꽃을 내놓아 자기 할 일 다 할 때 소나무 숲은 이걸 수용하였다. 그리함으로 송림은 더욱 포용력 있는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아름다움은 더했다.
찍히고 잘린 가지들도 슬픔과 상처를 지닌 채 연한 가지를 내고 푸른 잎을 내어 제 몫을 다하는 상처 입은 나무도 수용하니 하늘도 감동하고 바다도 감탄하여 검은 목도리까지 선사하였네. 멀리서 보면 가관이요. 하나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름 모를 잡초들도 한 구석에 줄줄이 서서 봄을 알리기 위해 방석을 깔았으니 소나무군은 더욱 빛났다.

친구들 속에 끼어들 자격이 없어도, 알게 모르게 안과 밖이 할퀸 상처투성이의 나라 할지라도, 아예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자격이 못해도 자기의 위치에서 할 일을 다 하면서 더불어 살아간다면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 바다도 놀라고 바람도 놀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볼수록 작품은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며, 영원히 간직하고픈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

크고 작은 새들도 자기들의 보금자리 제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들 특유의 목소리로 노래하니 어느 누가 그 화음을 흉내 내랴! 그들의 소리 하나하나 떨어져 울면 시끄러운 잡소리로 들릴 것이나 숲 속에서 함께 모여 품어내는 소리이기에 멋진 하아모니를 엮어내게 된다. 현재의 위치가 어떠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나에게 주어진 소질과 자질을 총동원해서 맡은 일에 충성하여 시끄러운 소리 내는 인간이 아니라, 멋진 하모니를 엮어내는 소리 내는 멋진 인간되고 싶다.

그렇다. 숲속에 어울려 한몫하는 까마귀처럼, 상처입고 잘린 채 새 가지를 내며 역한 싹을 내는 나무처럼, 어울리기 힘들지만 함께 어울려 싱싱함과 아름다움으로 한 몫 하는 벚꽃처럼,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는 잡초지만 줄줄이 자리 깔아 푸르름을 과시하는 들풀처럼, 현재에 처한 대로 제 몫을 다하며 살고 싶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져보라는 은은한 목소리가 3월 말의 아침 찬 기운과 함께 내 옷가에 스미고, 내 귀가에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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