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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6)

수련 3일째가 되면 수련생들이 대왕암을 찾는 날이다. 6시 기상해서 체조를 한 후, 신라 문무왕비가 죽어서 문무왕처럼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이 바위로 잠겼다고 하는 대왕암에 간다. 그러면 나도 머리를 깨끗이 씻고 체육복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연수원 후문을 통해 해변을 따라 난 산책길을 따라 걸어간다.

그러면 하루의 산책은 주위의 자연 배경으로 인해 한 폭의 그림을 안고 돌아오게 된다. 내가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면 여러 산책객들을 만나게 된다. 보통 때는 날씨가 썩 좋지 않은데 오랜 만에 화창한 날씨가 되면 더욱 머릿속에 담을 것이 많아진다. 맑게 갠 하늘에 간간히 보이는 옅은 구름과 바다 위에 떠있는 조각배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 준다.

산책길의 왼쪽은 소나무 숲이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확 터인 동해바다와 하늘이 열리며 앞에는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대왕암이 보인다. 어떤 날은 바닷가의 크고 작은 바위만 눈에 들어온다. 제일 먼저 들어오는 바위는 바다 위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바위, 설움에 지치다 못해 굳어 버린 바위, 자기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바닷물은 자주 변덕을 부린다. 기분 좋으면 열어주고, 기분 나쁘면 감싸버리는 심술궂은 바닷물이지만 그 바위는 체념한 지 오랜 듯 신경 쓰지 않는 바위, 내가 쳐다 볼 땐 바닷물은 화났던지 그 바위를 반쯤 덮어버렸지만 그래도 얼굴 붉히지 않는 바위.

난 때때로 변덕부리는 심술쟁이 앞에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이며 분위기를 흐려놓는 나에게 “그것 다 쓸데없는 짓 아니냐? 참고 또 참아, 어찌 그런 일이 한두 가지겠어? 하루에 꼭 두 번 씩 찾아오는 변화 속에서도 난 끄덕없이 그 자리 지키잖아? 그리고 말하지 않잖아? 지금도 당하고 있잖아”하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 뒤에 보이는 길게 늘어선 바위는 아침 햇살에 등에 업고 연푸른 하늘 울타리 치고 푸른 숲을 병풍 삼으며, 푸른 바다 마당 깔아 그 위에 앉아 있는 그 모습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구나! 계속 길을 가는 동안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눈에 들어 왔다. 목이 반쯤 잠긴 바위, 하얀 분칠을 한 바위, 입술에 검은 연지를 바른 바위, 칼로 그은 듯 갈기갈기 찢어진 바위, 혼자 외롭다 못해 소나무 친구 삼는 바위, 새까맣게 멍든 바위, 피멍든 바위,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돌들.

때로는 매서운 파도와 차가운 폭풍우와 싸우기도 하며, 때로는 고기와 갈매기와 소나무와 벗하며 평온하게 지내기도 한다. 어떤 곳에는 외로이 혼자 어떤 곳에는 둘이서 또 어떤 곳에는 여러 개의 바위가 모여 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바위는 큰 바위를 이루어 무게를 잡는다.

대왕암 입구 언덕 위에는 낮은 소나무 군(群)이 무리를 이루어 전체를 뒤덮었는데 뒤돌아보면 보이는 소나무와는 너무 대조를 이룬다. 언덕 위의 소나무는 20cm정도 곧게 자라고 나서 거센 폭풍을 대비하려는 듯 옆으로 누워 있고, 그것도 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여럿이 빽빽하게 뭉쳐 있다. 40-50m 되는 소나무 군(群)에 비하면 서글퍼 보였지만 그들의 단결력과 응집력은 대단했다. 소나무 군(群)보다 더 푸르게 보임은 그들의 각오가 단단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왕암은 커다란 바위 군(群)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왕교를 지나다 보면 왼편에 심한 칼자국으로 인해 겹겹이 줄이 그어져 지금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보였다. 조금 지나보면 바위 틈새 물이 비집고 들어와 10m이상 홈이 파여져 있었는데, 그 속에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번개 치는 소리와 같았다. ‘구르렁, 구르렁’ 반복해서 들려온다. 이 소리는 분명 싸움터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이며 신라 병사들의 승전가를 부르는 기쁨의 함성처럼 들린다. 대왕암 한 구석의 1m가량의 소나무는 대왕암의 어린 친구처럼 보인다.

대왕암을 찾은 나를 환영하는 듯 희고도 검은 물새들은 대왕암 주위를 맴돌고 있으며, 맑은 햇살은 너무나 찬란해 반사되는 빛조차 눈부셔 쳐다 볼 수 없구나. 하늘도 나를 맞아 새것을 선물하니 그것은 다름 아닌 검푸른 목걸이구나!
대왕암에 이르면 대왕암의 내력이 안내되어 있다.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문무왕처럼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이 바위로 잠겼다하여 대왕바위라 하며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하여 용추암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대왕암을 볼 때 옛 추억이 기억난다. 내 평생 간첩신고를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대학시절이고, 한 번은 신혼시절이었다. 대학시절 겨울방학 때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이웃 사람을 찾는데 그 집의 큰아들이 북에 넘어갔다는 말은 적이 있었다. 미심쩍어 기우뚱거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기념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기에 ‘이 사람 간첩이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내고 나서 곧바로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를 했는데, 나 때문에 신원조회 한다고 하루 밤을 파출소에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편 미안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신혼 때 옆방에 살던 아저씨가 새벽 2-3시경 되었는데 ‘따다다다, 따다다’ 무전 치는 소리가 그칠 줄 모르니 그 날 밤은 뜬눈으로 보내고 친구 순경에게 신원조회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 아저씨는 취직시험을 위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타자연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웃을 일이지만 나라 사랑하는 마음 조금이라도 있으니 문무대왕비도 이해했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소나무 숲 사이로 걸어오면서 늘려 있는 산 속의 크고 작은 바위들을 유심히 본다. 그들은 모양낼 줄 모르고, 있는 대로 생긴 대로 분도 안 칠하고, 이끼 낀 채 매 맞은 채 놓여 있다. 그렇다. 산 속에 바위여! 이제 지켜 보려무나! 변화가 없을 땐 그 때 혼내 주게. 바위섬 흥얼거리며 자연길 따라 연수원에 도착한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 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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