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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7)

어제는 모처럼 서울에서 내려온 딸에게 그 동안 말로만 듣던 울산 산업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나들이를 했다. 현대자동차 제1공장으로부터 제5공장을 지나 현대 미포조선을 거쳐 저가 근무했던 울산교육연수원으로 안내했다. 그 곳은 8년 전에 근무했던 연수원이 아니었다. 바다는 옛 바다 그대로였지만 소나무는 아니었다. 수백 년을 곧게 자란 그 많은 해송들은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에 걸려 많이 잘려 나가 엉성해 보였다. 해송의 적인 재선충병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다 울산교육연수원이 울기공원 안에 위치해 있어 건물을 재보수해야 하지만 할 수가 없어 그런지 많이 낡아버렸고 도색도 하지 않아 이대로 연수원이 사라져버리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안 그래도 관할 동구청에서는 울산교육연수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곳을 공원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즈음이라 더욱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였다. 아무튼 연수원은 나같이 감성이 무딘 자에게도 감성을 키워주기 안성맞춤인데 그 곳이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다시 99년 4월로 돌아간다. 4월 7일 오후 제7기 ○○○○정보고등학교 1학년 230명의 입소식 첫날이었다. 운동장에서 모든 학생들이 다섯 바퀴 운동장을 돌면서 정신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진다. 그 때 모든 교육연구사님께서 운동장에 참여하여 학생들을 격려하며 힘을 실어 준다.

그런데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셨지만 그 때 당시 초등 출신의 정만영 교학부장님께서 노익장을 과시하듯 간소복 차림으로 학생들의 맨 뒷줄에 서서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많은 학생들의 낙오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많은 연구사님들의 본이 되셨다.

그분께서 모든 정신교육을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실망하시는 눈빛으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뒤에서 같이 뛰는 학생들이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더라는 것이다. 기가 차서 정 부장님께서는 ‘아저씨가 아니고 교학부장이다’ 라는 말과 함께 10년이나 교장을 하고 왔다는 말을 하였지마는 함께 뛰는 학생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연수원에서 일하는 아저씨이지요? 교육연구사님들은 아무도 뛰지 않는데... 일하는 아저씨이니까 함께 뛰지요?’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정 교육연구관님은 그들의 얼토당토 아닌 말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채 끝까지 뛰었다는 것이다.

정 부장님의 사제동행은 교육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역시 30년 이상 이름도 빛도 없이 교육에 헌신해온 터라 이런 수모, 능히 감당할 수 있었으리라! 아마 나 같으면 화를 내면서 그들을 불러놓고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자리에 불러놓고 이런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노라고 은근히 자랑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 부장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혼자서 수모, 억울함, 분노를 삭이셨던 것이다.

새학교문화창조의 주체는 현장교사임을 입증하듯이 몸소 행해 본을 보이셨다.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닌, 그야말로 자진해서 학생과 더불어 뛰셨던 것이다. 아저씨! 소리 들어가면서 말이다. 그것은 저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학생들 앞에 선 교사는 이러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세계시민을 길러 내는 일은 오늘의 교육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새 천년 새 시대를 앞두고, 98년 10월 새학교문화창조를 선포한 바 있다. 이 운동의 기본적인 토대와 동력은 일선 교사에 있고, 그 성패 또한 현장 교사의 자발적인 참여에 달려 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이다. 정 부장님이야말로 자발적인 참여의 선구자이며, 수련생들과 함께 뜀은 유연한 사고의 산물이었으리라!

이제 학생들의 고정적인 관념도 버릴 때가 되었다. 간소복으로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뛰고 있는 연구관님을 저희들 눈에 일하는 아저씨로밖에 보지 못하는, 틀에 박힌 시각을 바꾸는 것도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곁들어 하게 했다. 아마 정 장학관님께서는 워낙 몸집이 좋고 심성이 착하고 건강하셔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저는 아내와 딸에게 교육연수원 식당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대왕암을 보고 대왕암에 대한 내력을 간단히 설명해 주고 나오면서 옥수수, 번데기를 조금 사서 일산해수욕장에 와서 겨울바다를 보면서 함께 먹으면서 그 때를 추억하였다. 내가 묵었던 숙소를 가리키며 한 주씩 있다가 주말에 마산으로 갔던 때를 말해 주니 아내는 이런 곳에서 고생하는 줄을 몰랐었는지 '정말 고생했군요' 하면서 '그 때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 때 고생한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는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돌아올 때는 현대중공업을 거쳐 고 정주영의 회장님께서 직접 자기 돈으로 만드신 아산로를 타고 오면서 현대자동차를 보게 더욱 환하게 볼 수 있어 딸에게 조금이나마 울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한 곳을 일일이 안내해 주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언제 다시 어제와 같은 기회가 올지 그대를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나에게 또 하나의 기쁨과 감동을 준 것이 있다. 그게 바로 무릎 이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서울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김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내용이었다. 2월 15일 졸업식을 그대로 하느냐고 만약 하게 된다면 그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졸업식에 참석해 자기가 맡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직접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겨우 일어서 무엇을 붙들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졸업식에는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졸업식 때 가면 누가 옆에서 걸을 수 있게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눈물겨웠다.지난 한 해 3학년을 맡아 정말 수고 많이 하셨는데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와 기쁨을 배가시켜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미모의 선생님답게 마음씨도 너무 예쁘다. 전화 몇 번 하고 문자 몇 번 보낸 것 가지고 고맙고 감사하게 여기는 김 선생님에게 그건 교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 선생님께서 하루  빨리 회복되어 신학기 때는 근무하는데 지장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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