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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멧돼지 아빠를 꿈꾸며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성경 로마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부족한 삶 속에서 제가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삶의 가르침이자 좌우명이지요. 읍 소재지 농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곤 합니다. IMF라는 경제적인 한파가 몰아친 이후,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서글픈 애환들이 참 많습니다. 더욱이 어려운 가정 환경에 놓인 학생들의 눈동자를 만날 때마다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 지 그저 난감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학기 초에 제가 만난 학급 학생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다보면 절반 이상의 학생이 어려운 가정의 있는 학생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요즘 이혼 가정이 부쩍 많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육 현장에서도 편모, 편부의 학생들을 참 많이 만나곤 합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나이건만 삼촌집에 사는 아이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자라나는 어린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마음뿐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와 함께 울어주는 것, 웃는 아이들과 함께 웃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지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큰 행복과 보람은 제겐 없는 듯 합니다.

지난 겨울, 유난히 제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그들에게 진정 올바른 선생이었는지 생각해 보곤 합니다. 다행인 것은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해부터 어려운 가정 환경에 처해 있는 제자들에게 뭔가 뜻 깊은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아이들과 하루의 일상을 글로 적었는데 제법 많은 글들이 모아졌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하루 하루의 일상을 적은 글들입니다. 잡지사에 매달 투고하여 원고료도 받았고 전국 백일장 대회에서 장원을 해서 제법 큰 상금도 받았습니다. 한 푼 두 푼 모으다 보니 어느덧 큰 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 12월에 <사랑은 동사다>라는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수익금을 모두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로 한 것이지요. 5년 동안 계속하는 일입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접는 그들에게 뭔가 작은 힘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일입니다. 그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수필집 <사랑은 동사다>는 학교 현장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그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배웠던 추억담이자 교육 현장의 기록들입니다. 교문 앞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호루라기를 부는 봉사의 보람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극복해 낸 학생들의 사연도 실려 있습니다. 우체국 앞에서 칼국수를 팔아 성공한 얼큰 칼국수집 제자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수필집 발간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많은 지인들이 저의 뜻에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학자금을 돕기로 한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가까운 친척은 물론, 이웃들의 도움이 참 컸습니다. 그 중에도 (사)파주돈재갑진장학회에서 한 학생의 대학 입학 등록금을 직접 지원해 주셨고 고양시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시는 윤영준 선생님과 고양시 의사회 심욱섭 선생님께서 두 학생에게 따뜻한 가슴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난 겨울은 참으로 따뜻했고 포근했습니다. 이 밖에도 파주문인협회 문우와 많은 이웃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6명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 반에 ○혁이와 ○지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입니다. 대학에 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경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지요. ○혁이는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이혼한 후엔 연락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혁이는 늘 아버지 곁에서 간호에 전념하느라 배움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지도 역시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에 칠순이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서 지금껏 살고 있다. 용돈과 학비를 벌기 위해서 방과 후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우는 부모님이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장애아인 동생을 돌보는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집에서 어머니를 대신하여 동생을 돌보았습니다.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었지요. 그러나 이 학생들은 어려운 가정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었습니다. RCY(청소년 적십자)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학생들이었지요. 적성에 있는 진인선원을 비롯하여 파주시 금촌2동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불법 벽보제거작업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던 학생들입니다.

 요즘 대학 합격 소식은 물론이고, 좋은 직장에 취업했다는 반가운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며 휴대폰을 들여다봅니다. ○혁이는 국립 상주대에, ○지는 경원전문대에, ○우는 국민대에 진학했습니다. 다가올 2월 졸업식에도 따뜻한 가슴으로 정든 이별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여러 이웃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올해는 600백년 만에 맞이하는 황금돼지해라고 하지요. 이제 새해 새학기에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것입니다. 돼지는 다산성으로 저돌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지요. 가족 사랑이 매우 끔찍해서 자식들을 정성으로 잘 돌본다고 합니다. 제가 생활하고 있는 학교는 구장산이란 산 중턱에 위치한 학교입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35명의 어린 멧돼지들을 돌보는 멧돼지 아빠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멧돼지들과 함께 나눌 행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학년 새학기 학습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고, 수필집과 시조집 출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만났던 잔잔한 추억과 순간 순간 만난 행복을 기록한 글들입니다. 더불어 새해에는 학생들과 추억이 담긴 작은 문집을 발간하려고 합니다. 함께 글도 쓰고, 함께 그림도 그리면서 멧돼지 아빠로서의 따스한 정을 그들에게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니 새해에도 더욱 바빠질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나 봅니다. 울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행복만큼 보람된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지도 모릅니다. 새해 새학년 새학기에는 어떤 어려움도 돼지처럼 저돌적으로 헤쳐나가고 35명의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멧돼지 아빠를 꿈꿉니다. 요즘 저는 35명의 황금돼지를 만나는 벅찬 꿈을 수 없이 꾸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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