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교정을 나서는 데, 운동장 한 켠에 덩그러이 놓인 백 원 짜리 동전 한 개를 보았다. 누구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동전이었나 보다. 멋쩍게 돈을 주웠다. 동전을 줍는 일은 어느 여류시인이 말한 것처럼 다보탑을 줍는 순간이다. 오늘처럼 이순신 장군을 만나는 것이라면 더 없이 소중한 일이다. 백 원이면 방글라데시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가 가능한 돈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듯 하다. 풍요로운 세상을 반증하는 예일까? 10원짜리 동전은 이미 사람들의 안중에 없는 듯하다.
몇 해전부터 청소년 적십자 학생들과 함께 불우이웃 돕기 동전 모으기 행사를 펼치고 있다. 올해도 일주일 간 교문 앞에서 동전 모금을 했는데 63,830원이나 모았다. 10원짜리 동전에서 부터 500원짜리 동전까지 다양하다. 간혹 1,000원 지폐도 볼 수 있지만, 언제나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다.
100원, 어린시절 100원은 정말 대단했었다. 무서운 불주사를 맞는 날, 지레 겁을 먹고 엉엉 우는 나를 보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눈물 뚜욱~! 주사 맞고 나면, 엄마가 백원줄게."
그땐 어떠한 고난도 100원 하나면 이겨낼 수 있었다. 두 눈을 찔끔 감고서는 어깨를 불쑥 내밀었다
"예쁜 간호사 누나, 아프지 않게 놔주세요."
그 이후엔 군것질이 필요할 때마다 엄마에게 달려가곤 했다. "엄마 100원만, 엄마 100원만"하고 떼를 쓰곤 했다. 어린 시절, 100원은 나에게 희망이자 즐거움이었다. 용돈이 필요할 때면, 어머니께서 장롱에 올려놓은 돈을 슬쩍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물론 어머니께 걸렸다가는 혼쭐나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기억도 있다. 지금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용돈을 주시기전에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넌 엄마가 돈으로만 보이니? 담부터 아버지한테 좀 달라고 그러렴" " 너 오늘 숙제 다한거니? 밀린 거는 없는거지?"
힘들게 받아낸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내 작은 손바닥에 달랑 놓이면, 그 순간 난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였다. 만화가게, 알사탕, 뽑기, 쫄쫄이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하지? 뭘 사먹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순간만은 행복했다.
어른이 되어 100원의 만 배가 훨씬 넘는 봉급을 손에 쥐고도 그 시절처럼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엄마가 주는 용돈이 아닌 탓일까?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런 것일까?
출근길에 버스를 탔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요금은 1100원, 그런데 요금카드를 단말기에 찍었는데 이상하게도 1,000원으로 표시되어 나온다. 이상하다 싶어 버스 요금이 내렸는가 싶어 기사님께 여쭤보았더니 살짝 미소를 보내신다. 나를 위한 운전기사님의 배려였다. 아침에 교문에서 교통지도를 할 때마다 거수 경례로 만나는 기사님이시다. 여러 학생들이 있기에 교통 요금을 안 받을 순 없다시면서 기본요금만 받는다고 했다. 어찌보면 100원이란 작은 돈이겠지만 나를 생각해서 챙겨주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다. 그저 감동이 훈훈하게 밀려왔다.
한 십여 년 전의 수학여행 때의 일로 기억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에 함께 갈 수 없다는 한 아이가 있었다. 나는 학생 전원이 참여한 수학여행이야말로 진정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꼭 참석할 것을 독려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그 아이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 아이를 곧바로 버스에 태우고는 함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모든 학생들이 참여한 수학여행은 나름대로 흥겨웠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아침 때였다. 수학여행의 들뜬 기분에 아이들은 수학여행 기간동안 천방지축이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감독하고 관리하느라고 모든 선생님들은 며칠간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웠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이른 아침, 기지개를 펴고 숙소를 나서는 순간이었다, 그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선생님, 이거~ 드세요! 박카스를 사 드려야 하는데.... 죄송해요"라며 요구르트 한 병을 불쑥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이의 주머니에는 300원만 달랑 있었다고 했다. 미처 수학여행 준비할 틈도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차에 태웠기 때문이다. 설악산 흔들바위를 오를 때 무더위를 이겨려고 쭈쭈바를 100원 주고 하나 사 먹었고, 동생 주려고 100원짜리 돌하루방을 하나 샀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100원은 나를 위해 요구르트를 산 것이다. 난 그만 눈물이 핑돌고 말았다.
100원의 소중함, 난 그동안 그 순수함을 모두 잊고 살았다. 어린시절의 그 행복감, 또 운전기사 아저씨의 따뜻함, 한 학생의 감동이 넘친 사랑, 아니 다 잃어버렸다고 해야 옳은 말일게다. 어쩌면 커져 버린 내 손바닥처럼 내 욕심도 커졌기에 그 소중함을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100원 짜리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달리던 그때의 부자만큼이나 난 지금 만족한 걸까? 잊고 살았던 시절의 100원의 소중함, 다시금 그 시절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보고 싶다.
새학년 새학기가 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정성을 모으고 있다. 100원짜리 동전이 모여 불우한 이웃에게 작은 행복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시절의 그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백원의 행복을 만나고 싶고 또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