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희야~! 어떤 일이 있든 무조건 아이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하게 대하지 말거라."
18년전, 처음 교직에 들어설 즈음, 아버지께서 나를 조용히 불러 놓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그때는 '사람을 감싸 안는다'는 의미를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하게 대하지 말라는 의미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열정과 사랑으로 가르치고 직장 안에서 인간관계를 잘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이제 교직에 들어선지 꼭 17년이 된 지금, 아버지의 당부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얼마 전, 한 초등학교 교사가 어린 학생을 체벌한 사건이 문제가 되더니 며칠 전에는 학생의 뺨을 때린 교사가 교단을 떠나는 불상사가 있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오늘을 생각해서 선경지명처럼 내게 하신 귀한 말씀이리라.
옛날에 열 살을 갓 넘을까 말까한 꼬마 신랑이 있었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신부에게 장가를 간 것이다. 오늘날에도 누나 같은 연상의 여인이 배필이 좋다며 유행처럼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일제 치하에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시대의 아픔이자 산물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이든 신부가 철없는 신랑의 투정과 우격다짐을 다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신부에게는 철부지 꼬마 신랑이 늘 힘겨운 상대였으리라. 시도 때도 없이 뭔가 먹고 싶다면 곧바로 대령해야 했고, 이 것, 저 것 갖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곧바로 가져가야 했다. 철없는 신랑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시부모 눈치 보랴, 시누이 눈치 보랴, 살림하랴. 이만저만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꼬마신랑의 투정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반복되다보면 신부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앞서고 서러움이 폭발하기 마련이다.
어느 여름날,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잠시 집안 일로 출타 중이었다. 꼬마신랑은 오늘도 어김없이 감 내놓아라, 배 내놓으라고 억지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다. 가지각색의 투정을 부리면서 신부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치마의 속곳을 들추는가 싶더니 잘 차려 입은 고운 옷에 흙을 퍼 붓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막무가내로 투정을 부리더니, 급기야 시궁창의 물을 퍼 부으면서 자신과 놀아달라고 투정을 부리곤 하는 것이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지아비 섬기는 며느리의 몸은 언제나 바쁜 법이다. 시집살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때를 맞추어 끼니를 준비해야 하고, 집안의 온갖 빨래도 도맡아서 해야 한다. 장독대 장이 잘 익도록 관리도 해야 하는 처지다. 어린 꼬마 신랑과 놀아주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계속해서 투정부리는 철없는 꼬마신랑을 맞상대할 여력이 없었나 보다. 화가 난 신부는 호박이 탐스럽게 열린 초가지붕 위에 신랑을 내 던져 버렸다. 버릇없는 어린 꼬마 신랑에게 겁을 주기 위한 심사였다. 꼬마신랑은 겁을 먹었는지 엉엉 울면서 내려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신부는 꼬마신랑의 다짐을 받기 전까지는 내려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마침, 출타했던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며느리는 안절부절 못할 뿐, 이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신랑이 고하면 끝이 날 형국이었다. 오로지 신랑의 말에 달린 상황이었다. 그저 소박을 맞을 거란 생각에 하늘이 노랗게 보일 뿐이었다. 이젠 소박을 맞으면 친정에도 가지도 못하는 불쌍한 처지가 아니던가.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꼬마신랑은 갑자기 울음을 뚝 멈추는가 싶더니 "색시야~! 호박을 작은 걸로 딸까? 큰 걸로 딸까? 색시야~! 작은 게 맛있을 것 같은 데 칼국수해서 먹음 정말 맛있겠다."하며 좀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신부에게 다정스레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신부는 어떠했을까?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가슴이 찡한 감동의 속울음을 운 것이었다.
"예~! 그래요. 저~! 작은 호박을 따주세요. 시원한 칼국수 맛있게 해드릴게요."
지금껏 자신을 힘겹게 한 철없는 어린 꼬마 신랑이었을망정,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신랑의 따스한 말이 아니던가. 철부지 신랑일지라도 하나밖에 없는 진정 자신만의 신랑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그 마음에 그만 감동하고만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아껴주고 감싸안아주는 그런 사랑 말이다. 요즘, 가정이든 학교든, 서로 감싸 안아주기보다는, 야박하고 냉정한 모습을 자주 접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게 마련이고 자신만이 억울하다며 서로의 가슴에 금을 긋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악으로 망한다고 하지 않던가.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품어주는 아름다운 배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곧 봄이다. 처녀 총각이 만나서 신랑 신부로 한 가정을 이루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도 역시 새학년 새학기가 되면 어김없이 35명의 어린 신부를 맞이하게 되리라. 어린 신부들을 맞이할 생각만 하면 마음이 설렌다. 이제는 꼬마신랑처럼 어린 영혼을 배려와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그런 지혜로운 신랑이 되고 싶다. 교단에 섰던 18년 전의 그 첫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