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구호로 삼아온, 아니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아온 언어가 있다. ‘봉주리’, 그 뜻은 나의 전부를 사랑으로 주겠다는 의미이다. 내 이름이 봉희이니까 '봉희를 주겠다' 의미에서 출발한 나만의 어휘이다.
어느덧 18년의 세월 동안, 어린 영혼들을 만나서 그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동안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 순간, 그들에게 비취어질 나의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톱스타는 아니더라도 매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내 자신에 대한 변화와 변신이 없다면 그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더욱이 일선에서 학생들과 함께 해 본 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인기는 곧 학습 효과와 직결되는 중요 요소 중에 하나다.
요즘 자신의 속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 내가 학생들에게 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여러가지 구호다. 군대도 아니고 데모를 하는 것도 아닌데 웬 구호냐고 말하는 이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교육자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열정을 다하고픈 마음을 적은 인생구호이기도 하다. 또한 나의 구호는 아이들의 관심을 촉진하는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요즘 학생들 앞에서 "봉주리"를 자주 외치곤 한다. 그러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봉잡아" 한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봉주리' 하니까 아이들은 심심한 탓인지 '봉잡아'했을 뿐이다. 물론 그 당시에 모 방송국의 인기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는 봉이야" 라는 말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된 탓도 있었다. 사실, 맨 처음에는 일종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투였다.
또한 얼마 지나서 각 방송국의 TV의 광고에 마라톤 선수 이봉주가 나와서 '봉쥬르 라이프'라고 외치는 바람에 내 구호는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아무튼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내 인생 구호처럼 되어버렸다. 아니 나의 별명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게다. 결국 학교에서 '봉주리 선생님' 으로 통하게 되었다. 내가 운영하는 학습 홈페이지의 이름도 "봉주리 국어"가 되어 버렸다.
내가 교정을 거닐다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언제나 "봉주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한다. 그 때문에 수업시간이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외치게 되었다. 물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어수선하거나 떠들면, 나는 여지없이 "봉주리"하고 외친다. 그러면 아이들도 '봉잡아'하면서 분위기가 일신 바뀐다. 때론 학생들이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아서 서운하거나 상할 때면 "봉주리"하고 외치기도 한다. 스스로 아픈 맘속을 달래려는 노력이다.
어느새 구호는 내 스스로 다짐하는 언어이자 내 마음을 추스르는 작은 응원가가 되고 있다. 때론 이 구호처럼 나의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주고 있는가를 반문해 보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매년 한 학기가 끝나면 나의 모습을 스스로 점검하는 때가 있다. 학기말고사가 끝나면 꼭 행하는 통과의례이다. 기말에는 공부에 대한 집중력이 어느 때보다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때에 내 자신을 돌아보는 손거울 게임을 하곤 한다. 이 게임의 방법은 한 장의 종이에 우리반 35명의 학생이 서로 돌려가면서 좋은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30초 안에 적는 것이다. 물론 나도 함께 참여한다. 36장의 종이가 한 바퀴를 돌아서 내게로 돌아오면 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손거울 게임이다. 늘 이 게임을 할 때마다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정말 수없이 다짐하고 결심한 내 삶의 구호인데 실천이 그리 지가 않다. 아니 결심이 자꾸 무너지기가 일쑤다.
지난 해도 손거울 게임을 통해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심판하는 준엄한 글도 있고 예리하게 나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다. 물론 나를 향한 아부성의 글도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공개하면서 이렇게 반성하며 용서를 구한다.
"나를 통해 혹시 마음이 상하거나 상처를 입은 학생들이 있다면, 사랑으로 혹은 너그러움으로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더 노력해서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하련다.
“앞으로는 나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주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이 마음을 꽉 붙잡아주시길 바랍니다.” "봉주리!” “봉잡아!"
앞으로 끝나지 않을 내 인생의 구호가 될 것 같다. 모든 학생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이 구호처럼 겸손으로 사는 좋은 선생님이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