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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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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연수원의 추억 (34)

연수원 주변은 언제나 봐도 좋다. 눈만 뜨면 들을 수 있는 건 새소리고, 커텐을 열고 앞만 바라보면 온갖 나무며 풀이며 꽃을 볼 수 있다. 위로 눈을 높이면 볼 수 있는 건 높고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창문만 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아침마다 진행곡을 들을 수 있다.

뒤로 돌아보면 푸른 소나무며 넓고 넓은 바다를 보게 되고, 바다하늘을 볼 수 있다. 흰 파도를 볼 수 있고 흰 구름을 볼 수 있으며, 떠있는 배, 떠가는 배를 볼 수 있다. 희고 검은 바위도 볼 수 있고 대왕암도 몽돌암도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좋고 흐리면 흐린 대로 좋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좋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좋다. 봄이면 봄대로 좋고 여름이면....월요일이면 월요일대로 좋고 화요일이면 화요일대로.... 금요일이면 더욱 좋다. 아침이면 아침대로 좋고 오후면 오후대로 좋고 밤이면 밤대로 좋다.

오월이라 좋고 금요일이이라 좋고 아침이라 좋고 맑음이라 좋다. 5월은 푸른 달이라 좋고, 금요일은 집에 갈 수 있어 좋고, 아침은 밝으니 좋고, 오늘 날씨가 맑으니 깨끗해서 좋다. 오늘 아침과 같은 날을 청상(淸爽)한 날씨라 하지 않는가?

숙소의 앞뜰은 질서정연해서 좋다. 가까이는 키가 작은 팔손이며 수국이며, 동백이며 더 작은 1년초화며 길 건너 향나무며 종려나무며 단풍나무며 종려나무며 그 뒤에 연산홍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뒤엔 벚나무, 잣나무, 목련나무 ,은행나무 등이 서 있고, 맨 뒤에는 소나무가 점잖게 서 있다. 그것도 가장 많이.

오늘은 특히 정원의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단에 심겨 있는 1년초(一年草)들의 꽃은 화려하다. 흰꽃, 노란꽃, 담홍색꽃, 자주빛꽃, 보랏빛꽃... 흰꽃에는 노란나비를 그려 놓았고, 노란꽃에는 흰나비를 그려 놓았다. 자주빛꽃에는 나팔이 그려져 있고... 화단에는 꽃세상이다.

4월에 이어 5월에도 피어 있는 꽃이 동백꽃이다. 피기 전에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예쁘게 핀 동백꽃도 있다. 인동(忍冬) 끝에 핀 꽃이라 그런지 영화(榮華)는 길구나. 담홍색을 띤 연산홍이 서서히 모습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연산홍바다를 이룰 것 같다. 연수원은 지상천국(地上天國)이다. 생활하기 좋은 연수원! 항상 기쁨을 준다.

하루는 연수원 숙소에서 '인내'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안순암(安順庵)이 처음 이성호(李星湖)를 보러 가니 목이 말라 물을 청하였다. 그러나 물을 주지 않고 이야기만 한다.

밤이 으슥한 뒤에, 성호가, “이제도 목이 마르냐?”하거늘, “사실대로 목마른 증은 없어졌습니다.” 한즉 성호가 가로되, “참아 가면 천하의 난사(難事)가 다 오늘 밤의 목과 같으니라.”하였다.

10년 전 주택에 살 때 내 방에는 “一勤天下無難事요 百忍堂中有泰和라”(하루라도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難事) 없게 되고 백 번이라도 참으면 가정에 큰 화목(泰和)있다)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물론 액자의 글이 강조하는 건 ‘부지런할 근(勤)’과 ‘참을 인(忍)’이다. 이와 같이 참는 것이 천하의 난사(難事)가 해결되고, 한없이 참으면 가정에 화목이 깃든다고 했으니 ‘참을 인(忍)’이 얼마나 소중한 낱말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 연구원 입구에 쓰여 있는 ‘자기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다.’라는 표어, ‘인내는 쓰나 성공은 달다.’라는 속담. 구구절절(句句節節)이 인내(忍耐)의 중요성이 필요함을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 참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자(漢字)로 ‘참을 인(忍)’을 분석해 보면 ‘칼(刀)로써 마음(心)을 도려내는 것’이다. 그러니 참는다는 것이 마음을 도려내는 것만큼 아프고 쓰리고 힘들고 죽을 지경이 아닌가? 내 같은 경우는 목말라도 참지 못하고, 배고파도 못 참고, 화가 나도 못 참고, 뜻대로 안 돼도 못 참고, 괴롭혀도 못 참고, 힘들어도 못 참고, 인사철이 되어도 못 참고...

훌륭하신 분들은 손톱과 발톱에 바늘을 찔러도 참고, 눈을 쑤셔도 참고, 살을 찢어도 참고, 옆구리를 찔러도 참고...
오늘부터 농소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3월 1일부터 근무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 부임인사를 하지 않은 상태라 사실은 내일부터 근무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오늘 학교를 한 번 둘러보려고 한다. 사택도 둘러보고 학교 주변을 둘러보려고 한다.

지난 한 해 한교닷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관계자 모든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교장이 되어도 e-리포터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 ‘교장이 되면 할 일도 많고 바쁜 텐데 활동을 그만하고 무게를 지키라’고 권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또 어떤 분은 ‘햇병아리로서 교장의 할 일이나 똑바로 하지’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더 열심히 한국 교육발전을 위해 함께 뛰고 싶다.

이제 새 학교에서 새 출발을 하는데 ‘忍’을 가슴에 품고 현장에서 실천하려 한다. ‘모든 견딤, 오래 참음’ 이것만이 '농소중학교'라는 공통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데 큰 힘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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