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4 (목)

  • 맑음동두천 20.4℃
  • 구름많음강릉 22.8℃
  • 맑음서울 18.8℃
  • 구름많음대전 22.6℃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2.8℃
  • 구름조금광주 22.7℃
  • 구름조금부산 18.2℃
  • 구름조금고창 18.9℃
  • 구름많음제주 19.2℃
  • 맑음강화 14.5℃
  • 구름조금보은 20.7℃
  • 구름많음금산 22.3℃
  • 구름조금강진군 22.6℃
  • 구름많음경주시 25.3℃
  • 구름조금거제 19.5℃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단합과 다짐의 건배사


 새학기가 되면, 부임하신 선생님들을 환영하고 교직원들 간의 단합을 위한 크고 작은 모임이 있다. 그때마다 형식적이든 자유롭게든 건배사가 오고 가게 마련이다. 교직원간의 단합과 다짐 혹은 기원의 건배사가 자주 오간다. 누구나 한 번쯤은 모임의 성격이나 구성원이 누군가에 따라서 건배 제의를 하게 마련이다.

원래 건배의 기원은 고대에 신이나 사자를 위해 신주를 마시던 종교적 의식에서 유래한다. 이것이 건강을 비는 의식으로 변했는데 술잔을 쨍그랑 부딪치는 것은 술 속에 숨어 있는 악마를 쫓아내고, 술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음을 서로 확인하며, 주객이 동시에 건배함으로써 손님에게 권한 술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서양 사회는 유목과 교역이 빈번하여 항상 낯선 사람과 공존해야만 하는 이질사회였기에 경계와 불신이 성행되어 이 같은 문화가 형성되었으리라. 자기가 마시는 술이 상대방이 마시는 술과 똑같은 무독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곧 불신이 기조가 된 것이 건배인 것이다. 이 건배의 문화는 서구 문명과 함께 들어오면서부터 우리의 주도(酒道)와 함께 섞여 행해지게 되었다.

 한국의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위하여’다. 가수 안치환이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잔을 들라는" <위하여>란 노래가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물론 그밖에도 여러 가지 건배사가 있다. 그냥 “건배”라고 하거나 “듭시다”, “브라보”, “지화자", "마시자", "원샷", "뭉치자", "곤드레" 등을 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건배사가 너무 판에 박힌 듯하면 회중에게 그리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건배사에도 분명 격이 있다. 장소와 시간 그리고 상황은 물론이고 그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각기 다르다. 따라서 건배사는 그 상황과 여건에 걸맞아야 제격이며, 가능하면 모든 회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우리말의 깊은 뜻을 살린 건배사가 좋을 듯싶다.

 사실, 멋진 건배사는 제창자의 인격, 지적 수준은 물론이고 만찬의 성격과 수준을 말해준다. 하지만, 건배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건배사도 작은 연설 구조라서 기본적으로 KISS(Kiss It Simple, and Short)에 입각해서 짧고 간략하게 하지만 명확한 건배사가 인상에 남는다. 그래야 모임 자리의 의미, 주제, 기원 등을 전달할 수 있고 구성원 간의 감흥과 공감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심각하게 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 있으므로 따뜻하고 즐거운 말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그러면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은 건배사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가슴 설레는 건배사는 마이클 커티스 감독이 만든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에서 일사(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릭(험프리 보가트)이 한 대사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건배사인가. 듣는 이가 기본 좋고 내가 전하고 싶은 의미를 담은 건배사가 아니던가. 어쨌든 건배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하는 세계적인 문화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건배사를 어떻게 말할까? 중국은 칸페이(干杯), 일본은 칸파이(乾杯)라고 한다. 술잔을 비우라는 의미다. 우리의 건배를 중국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치어스(Cheers), 토스트(Toast)”을 쓴다. ‘토스트’는 친숙한 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하면서 선창으로 쓴다. 물론 건배를 제의하기 전 앞에다 ‘~을 위하여’를 붙이지만. ‘토스트’는 옛날 술잔에 꿀을 타고 그 위에다 토스트 조각을 넣고 마시던 습관에서 온 말이다. 프랑스는 “아르보상떼(A Votre Sante : 건강하라)”, 이탈리아는 “아레 상태(건강을 빕니다), 스페인은 “살루트 아무르 이페세타스(Salud Amor, Ypes estas: 당신의 건강과 사랑과 돈을 위하여), 바이킹의 후예들은 “스콜”(건강), 에스키모인들은 “이히히히히”, 그리스인들은 “이스이지안, 스텐휘게이아”, 멕시코 사람들은 “사루으(salud)”, 러시아에서는 “스하로쇼네 즈다로비예”라고 외친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프로스트(Prost : 당신을 축복한다)”라고 외친다. 이때 잔을 눈높이까지 들었다가 왼쪽 가슴에 대고서 상대방의 눈을 응시한 다음, 다시 술잔을 눈높이로 가져갔다가 마신다. 이탈리아에서는 ‘친친’이라 한다. 그 밖에 스페인과 멕시코는 ‘살루우(Salud)’, 태국에서는 ‘차이 유’, 이집트에서는 ‘피 시히타크’라고 한다. 모두 건강을 빈다는 뜻이다.

 모임에서 건배사를 부탁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쑥스러워 사양하기 십상이다. 그때 다소곳이 수줍은 듯 ‘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란 뜻을 담은 “진ㆍ달ㆍ래”를 외치면 어떨까? 이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강조할 때 쓸 수 있는 건배사다. “당ㆍ나ㆍ귀”라는 의미 있는 건배사도 있다. 당나귀는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란 뜻으로 관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건배사다. 첫 모임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끼리 나누면 좋은 건배사다. 이외에도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란 뜻을 담은 “나,가, 자”라는 건배사도 있다.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올 한 해를 힘차게 달려나가자는 의미다. 회중에 누군가가 그 말의 뜻을 풀이하고 “나가자”를 선창하고 그를 따라서 “나가자! 나가자”를 함께 외쳐 보자. 절로 흥이 돋고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건배사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모인 자리라면 “나이야 가라”를 외치도 좋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변하곤 한다. 따라서 나는 여전히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할 만큼 육신이 팔팔하다는 의미로 힘차게 외쳐도 좋을 듯싶다. 나이가 주는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자는 의미다. 그 점에서 힘찬 역동성을 보여줄 수도 있기에 적합하다. 이외에도 “구구ㆍ팔팔(9988)”도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뜻이다. 나이가 들더라도 건강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살아가자는 의미다.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에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담은 건배사도 좋다. 새해에 다짐을 담아 건배사를 해도 좋다. 그중에 하나가 “시, 미, 나, 창”이다. “시작은 미미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뜻을 담은 건배사다. 그렇다고 다짐의 말을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그 맛이 떨어진다. 그 외에 “일, 십, 백, 천, 만”이라는 건배사도 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좋은 일을 하고 10번 이상은 큰 소리로 웃으며, 100자 이상 글이나 편지를 쓰고, 1000자 이상 책을 읽으며, 만보 이상 건강을 위해서 걷자”는 의미다. 좋은 일을 열심히 하며 웃고, 글과 편지를 쓰며 자신을 성찰하고, 독서를 통해 배우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거기다 건강까지 받쳐준다면 더 없이 멋진 인생일 것이다.

 이외에 단체 회식을 할 경우, 분위기를 띄울 때에 회식용 건배사로 “개ㆍ나ㆍ리”를 외치도 좋다. ‘계(개)급장은 떼고, 나이를 잊고, 리렉스(Relax) 혹은 리프레쉬(Refresh) 하자’는 뜻이다. 물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예의에 적합할 것 같다. 권위와 위엄을 벗고 위아래가 모두 하나가 되어, 편하게 마음을 소통하며 기분을 전환하자는 의미다. 아랫사람이 쓴다면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할 건배사다.

 올해 정해년에 어울리는 건배사는 뭐니뭐니 해도 “당 , 신, 멋, 져”라 생각한다. 건배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당신은 멋지십니다’라며 칭찬의 말, 서로 격려하며 힘을 돋우는 빛나는 건배사라고 할 수 있다. 그 뜻은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그리고 때로는 져주며 살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배사다. 당차게 당당하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권세에 주눅 들지 말고, 돈에 기죽지 말고, 학벌에 꿀리지 말고, 자신있게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의미다. 아울러 신나게 살자는 것이다. 힘겹고 우울한 일이 있더라도 나쁜 생각은 접어버리고 오히려 흥겹게 박수를 치며 좋은 생각으로 웃으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내가 우울하면, 내 학교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그리고 내 가족이, 내 동료가 우울해 지기 마련이다. 내가  힘들어지고, 리더가 힘들어지면, 구성원 모두가 힘들어지는 법이다. 따라서 힘들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스스로 신명을 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멋지게 산다는 것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으며,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한들, 갑자기 멋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멋있게 살려면 우선 내가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멋있으면, 뭘 입어도, 무엇을 먹어도, 어떤 차를 타도 멋진 법이다. 

 그러면 진정 멋지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때론 져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경쟁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경쟁에는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경쟁에서 모두 이기려고 욕심을 내면 큰 낭패를 보기마련이다. 때론 양보가 필요한 법이다. 욕심 부리다가 진다면 무슨 소용있겠는가? 자고로 작은 것은 주고 큰 것을 얻으려면 때로는 져주는 양보가 필요하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길임을 왜 모르는가? 예수도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지 않았던가? 지고도 이긴 실례다.

 정해년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달려가되 당당하게 신명나게 멋지게 살아갔으면 한다.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혼신을 다하는 교육자의 삶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삶이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교단에서 묵묵히 열정을 다하시는 훌륭한 교육자가 많다. 고생의 절반은 보람으로 다가올 날이 꼭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하려면 무엇보다도 올해는 건강해야 한다. 단합과 다짐을 기원하고자 하는 크고 작은 모임에서 격에 벗어난 지나친 음주는 무서운 적이다. 오히려 단합과 다짐의 의미를 해치고 그 구성원에게 폐를 가져오는 극단의 행위다.  더욱이 음주 운전은 절대적으로 피하시길.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