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 전원 출석입니다. 약속대로 오늘 자장면 사주시는 거죠?" "그래. 오늘 종례 시간에 자장면 파티다" "와~!, 선생님! 짱입니다요."
다시 한번, 아이들의 우렁찬 함성이 교실에 울려 퍼진다. 새 학기를 들어서 처음으로 시작한 자장면 파티가 될 성 싶다. 엊그제 지각하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지각생이 없으면, 모든 학생들에게 자장면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어제는 다섯 명이나 지각을 했고 1명이 결석을 했다. 새내기들을 처음 배정 받은 후에 일주일 전부터 학교생활을 위한 학급 카페를 개설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전화와 문자를 통해 근태상황을 점검했었다. 하지만 입학식 첫날부터 근태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러다보니 피곤해서 정신없이 잠을 잤고 깨어나니 오전 11시란다. 결국 입학식 날에 학교에 늦게 등교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학생은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에 떨어진 부천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매일 수업을 마친 후에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새벽 1시가 넘는다고 했다. 월 100만원을 벌어서 동생 학비도 대고 자신의 용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피곤해 결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은 결석생은 물론이고 지각생이 한 명도 없다. 매일 아침 학교에 출근하면, 학생들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것이 요즘 나의 일상사다. 실업계 고등학교이다 보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참으로 많다. 35명의 학생들 중에 한 부모 자녀도 있고,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생활하는 학생이 4명이나 된다. 부모가 없이 삼촌댁에서 생활하는 학생도 있다.
가정형편 탓일까? 성적 때문에 실업계에 진학했다는 자괴감 탓일까? 의욕이 없고 늘 어깨가 축 처진 상태들이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보다는 야단과 질책을 듣는 것이 마치 일상생활이 된 듯하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좋은 점들을 찾아 지지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학업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이 없다보니 학교생활이 곤고하고 힘겨운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을까? 요즘 나의 큰 고민 중에 하나다. 그 중에 생각해 낸 방법이 "자장면 먹는 날"이다. 얼마나 그 효과가 있을 지는 아직 의문이다. 맛있게 자장면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에게 학업에 대한 열의와 성취감도 줄 수 있고,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작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자장면을 먹는 잠시 잠깐의 시간이지만 공부하는 힘겨움도 조금은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기념일엔 늘 자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생일에 자장면을 먹고 싶어서 어머니께 사달라고 조른 기억이 있다. 내가 처음 자장면을 먹은 기억은 중학교 입학식 때다. 농촌의 면소재지 중학교에 입학하여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사주신 꿀맛 같은 자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 자장면 먹는 일이 대학 졸업식 때까지도 계속 이어졌지만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제법 고풍스런 분위기가 있는 중국집을 찾아 자장면 곱빼기를 게걸스럽게 먹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도 자장면을 가장 맛있게 먹던 때는 군대시절이었다. 전방 GOP 부대에서 근무할 당시 잠시 업무로 인해서 외출을 하게 되면 나는 여지없이 자장면 곱빼기를 두 그릇이나 후딱 해치우곤 했다. 이런 나의 모습에 자장면집 주인은 사뭇 놀란 눈치였다. 그 다음부터 자장면을 주문할 때마다 반인분의 분량을 더 주곤 했었다. 지금도 늘 그렇지만 자장면을 먹을 때면 바닥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깨끗이 먹는 편이다.
옛 시절의 자장면의 추억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요즘 먹거리가 참 많은 세상이지만 자장면을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이들도 신나는 듯 환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자장면을 기다린다.
요즘 손전화가 있어서인지 자장면을 주문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탓인지. 배달문화가 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으레 피자와 만두, 양념치킨까지 주문하여 배고픔을 해결하곤 한다. 편리를 추구하는 세상이다 보니 엄마가 정성껏 싸주시던 도시락은 잊혀진 지 오래다. 학교 급식이 생겨나면서 서로의 도시락을 나누는 인정을 찾아볼 수 없다.
아무튼 좀 전까지 시끌시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자장면 특유의 내음이 진동한다. 맛있게 자장면을 먹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배고픔을 해결한 반장 녀석이 대뜸, "선생님, 내일도 지각생 없으면 또 자장면 사주시는 거죠?" 한다.
"그래. 내일도 전원 출석하고 지각이 없으면 또 사 주마" "우와~! 선생님 짱입니다요. 택민아! 지훈아! 너 내일 학교 일찍 와야 한다. 알았어!"
내일도 역시 내 지갑이 좀 가벼워질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결석 지각이 없는 학급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장면 먹는 날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