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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그림이나 영화나 명화가 좋다

징기스칸은 제 이름자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했고, 공자님도 모르는 것은 아는 체 하지 말고 물어 보라고 하였다. 나 역시 그 말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읽을거리, 볼거리, 먹거리 등등 이것저것 시시콜콜 이웃에게 물어보는 편이다.



문학에 제법 조예가 깊고 영화를 매우 좋아하시는 한 분에게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달랬더니 <디어헌터>를 알려주면서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CD까지 빌려 주었다. '디어헌터(The Deer Hunter)'는 우리말로 사슴사냥꾼, 옛날 소싯적에 극장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러시아룰렛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만 기억할 뿐 도통 인상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궁금한 게 월남에는 사슴도 살지 않을 텐데 하필이면 영화제목을 <디어헌터>라고 지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쉽게 연결은 되지 않았다. 지나가는 아내에게 물었더니 그 역시 이 영화 장면을 언뜻 보더니 이 영화는 무지무지하게 지겹다면서 자기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졸은 기억 밖에 없다고 별 도움이 안 되는 말만하고 가버렸다. 그래도 명색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그림도 명화가 좋고, 영화도 명작이 좋은 법이니 그리 하찮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는 보는 그 시간 동안 즐기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되새김질 하듯 곰곰이 씹어 가면서 두고두고 즐겨야하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아무래도 후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즐기려면 사전 공부가 조금 필요하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한 도시이다. 철강공장이 마을 한 가운데 있고 이슬람 사원과 같은 돔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니 웬 미국에 이슬람 사원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처럼 생각했다면 이 영화의 입구부터 잘못 잡은 셈이니 한참은 헤매야 된다. 재미도 반감된다. 그러므로 정확한 이해와 재미를 위해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이건 이슬람 사원이 아니고 러시아 정교의 사원이었다. 정교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0년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처음으로 허용한 정통 기독교이다. 이후 서로마제국과 맺고 있는 역사적 관계로 해서 이 교회를 '동방 교회'라고 부른다. 그 대표가 그리스 정교이다.

서기 천년 경에 러시아는 국가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보다 보편적인 종교를 찾게 되었는데 당시 유행하고 있던 정교, 로마 카톨릭교, 이슬람교, 유태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 때 콘스탄티노플을 찾은 방문단이 '성 소피아 사원' 등을 둘러보고 그 화려함에 놀라 바로 정교를 받아 들었다고 한다. 러시아정교는 국민들의 큰 저항이 없이 슬라브인들의 통합을 촉진시키는 큰 기여를 하였다. 

그 후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했고 콘스탄티노플 총주교하의 동방정교회는 약 350년 동안 오스만터키의 지배하에 놓였다. 동방 정교회는 대부분 이슬람 세력권에 들어가 버렸으므로 이 밖에서 가장 유능한 지도력을 가진 나라는 러시아뿐이었다. 이리하여 비잔틴제국이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던 동안은 러시아가 정교의 대보호국이 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해서 펜실베니아 한 마을에 러시아 정교의 돔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이기에 깃발이 붉은 것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붉을 것을 너무 좋아했으므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붉게 되었듯이 돔 역시 이슬람의 유물이 아니라 서아시아의 유물인 것이다.

<디어헌터>의 첫 배경으로 나오는 이 마을은 러시아 정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이다. 이 마을의 주민은 대부분이 러시아 출신의 이민자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문화를 잘 보존하고 미국의 현지에도 적당히 잘 적응한 후손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전통이 중요해진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결혼식 장면이다. 러시아정교의 전통대로 치러지는 러시아식 결혼이다. 지루하리만큼 오래 이 장면을 비추는 것은 한 사회의 문화를 가장 대표하기 것이 관혼상제이기 때문이렸다.

영화는 월남전으로 접어들면서 처절해진다. 월남전에 참가한 셋은 베트콩들의 포로로 잡히고 포로를 데리고 재미로 하는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할 것을 강요당한다. 몸이 반쯤은 물에 잠겨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포로생활을 견뎌내다 못한 스티븐은 가장 먼저 희망과 용기를 버린 채 낙오가 되었고, 마이클은 스티븐을 구하고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닉을 설득해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게 되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들은 포로생활과 전쟁, 러시안룰렛에서 받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말미암아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다리가 부서진 스티븐은 야전병원을 거쳐 미국으로 송환되지만 두 다리를 잘라내야 했고 자신의 이러한 모습에 자신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닉 역시 베트남의 악몽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사이공이 러시안 룰렛 도박장을 돌아다닌다. 마이클은 그래도 가장 멀쩡해 보이지만 그 역시 전쟁이 큰 상처를 입었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만 앗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간의 관계도 파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문화가 받쳐주는 따뜻함은 변함없는 우정과 아름다움을 복원시킨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월남전을 주제로 만들어진 전쟁영화이면서 다른 전쟁영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전쟁을 얘기한다. 그런 사전 지식을 가지고 본다면 상영시간 3시간 4분이 그리 길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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