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 흐르는 관동별곡의 흔적을 따라(1)고성을란 뎌만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서
단서는 완연하되 사선은 어디 가니,
예 사흘 머은 후의 어디 가 머믈고
선유남 영랑호 거긔나 가 잇난가
청간정 만경대 몇 고듸 안 돗던고
-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10수 중에서
위 노래는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의 제 10수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가사는 실제 노래로 연주된 가사(歌詞)와 문학으로 창작된 가사(歌辭)로 구별되는데, 정철의 관동별곡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며 창작 연대는 선조 13년인 1580년이다. 당시 정철의 나이는 45세였다.

관동별곡은 일종의 기행가사이다. 송강이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된 후 임지로 향하던 중에 방문했던 명승지를 뛰어난 문장실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씩 흠향하면 문장의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천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피어난 설중매의 은은한 향이 문장 사이에 배어있다.
그러면 관동별곡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노래한 것일까. 송강 정철이 치밀하면서도 부드러운 언어로 노래한 관동별곡에는 관동팔경의 모습이 담겨있다. 즉 고성의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을 노래했다. 아쉽게도 송강은 망양정에서 절창을 마쳤기에 관동팔경 중 평해의 월송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고성의 청간정은 관동팔경 중에서 가장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관동팔경이 화려하면서도 요염한 기생을 닮았다면 청간정은 검은 치마 흰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달빛 아래 춤을 추는 순백의 아낙네를 닮았다. 다른 관동 팔경이 화려한 휴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라면 청간정은 은은한 내면의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안식처이다. 비록 송강이 관동별곡에서 스치고 지나가듯이 말했지만 청간정에는 다른 관동 팔경이 따라올 수 없는 은밀함이 있다.
청간정의 2층에 올라서서 정자의 기둥 사이로 비친 바다를 바라보면 모래사장이 회돌이 치는 특이한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에서 발원했다는 청정옥수 청간천이 청보라 빛을 닮은 동해로 흘러들면서 모래사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모래사장의 왼편에는 무리지은 해송의 연초록 잎들이 갈매기와 파도의 합창에 맞추어 일렁거리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망망대해 그 자체일 뿐, 정자 주위에 군락을 이룬 대나무가 시를 읊듯이 잔잔한 음성을 발한다.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뚜렷이 남아 있으나,
이 글을 쓴 사선(四仙)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사흘이나 머무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단 말인고?
선유담, 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를 비롯하여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고?

여기에 나오는 사선은 신라의 네 화랑인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을 일컫는다. 네 화랑은 금강산과 그 주변을 유람하면서 많은 전설과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송강은 10수의 마지막 구절을 통해 네 화랑이 청간정에서도 놀지 않았을까 추측하면서 우회적으로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속초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고성 방향으로 약 7km정도 지점에 아가씨처럼 곱게 숨어 있는 청간정. 동해의 칼바람 파도가 청간정 아래의 기암괴석에 부딪히면 흰 파도가 눈처럼 뭉쳤다가 녹는 것을 유감없이 볼 수 있는 청간정. 오메가 일출이 일품이고 월출의 경치 또한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 그곳이 바로 청간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