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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상서로운 구름과 육룡이 머무는 양양 낙산사

- 동해안의 관동별곡(3)

  이화는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 울 제/낙산 동반으로 의상대에 올라 안자
일출을 보리라 밤중만 니러 하니/상운이 집픠난 동 육룡이 바퇴난 동
바다를 떠날 제는 만국이 일위더니/천중에 치뜨니 호발을 혜리로다
아마도 녈구름 근처에 머물세라/시선은 어듸 가고 해태만 남았나니
천지간 장한 기별 자셔히도 할셔이고
- 관동별곡 중 본사 (2)-3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낙산사의 일출을 묘사한 부분으로써 그 탁월한 묘사력이 무척 인상적인 부분이다. 새벽의 어스름을 젖히고 조금씩 올라오는 태양의 몸짓은 농홍한 구슬이 바다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누구라도 넋을 잃지 않을 수 없다. 장엄하면서도 묘려한 그 모습에 누구라도 엄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동해의 일출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표현하는 가장 웅대한 오브제이다. 

  


  기실 동해에는 낙산사의 일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활처럼 휘어진 모래사장 위로 떠오르는 해운대의 일출도 있고, 서로 제일 빠른 일출이라고 다투는 간절곶과 호미곶의 일출도 있다. 옥색바다 위로 떠오르는 정동진의 일출도 있고, 겨울연가의 애잔함이 스며있는 추암 해수욕장의 일출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출 중에서 낙산사의 일출이 단연 군계일학이니 그 아름다움을 두어 말하면 무엇 하리.

  낙산사의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관세음보살상과 일출의 멋들어진 조화 때문이다. 여명이 밝아올 즈음이면 관세음보살상은 귤의 속살을 닮은 황색으로 물들여진다. 그러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서 분홍빛이 조금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불그스름한 빛이 그의 몸을 휩싼다. 곧 이어 나타나는 보살상의 금빛 찬란한 미소! 그 두 볼에 흐르는 미소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낙산사의 진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홍련암과 의상대,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봐야 한다. 홍련암은 낙산사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가 7일간이나 좌선한 후 바다에서 솟아나온 홍련 속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이 홍련암과 주변의 절벽이 오렌지 빛 일출에 노출되는 모습을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국인만의 특권일 것이다.

  송강 정철은 바로 이 의상대에서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상서로운 구름과 육룡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바다에서 해가 떠날 때에 온 세상이 흔들린다고 표현했으며, 그 해가 하늘에 뜰 때는 가느다란 머리터럭을 셀 정도로 밝다고 했다. 바로 여기에 송강의 뛰어난 묘사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섬세한 머리칼을 셀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한 일출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미에 구름을 빗대어 임금의 성총을 흐리는 간신배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을 걱정했다. 이 구절은 시선 이태백의 ‘등금릉봉황대’에서 인용한 것이다. 다행이 지난 화마에서 이 의상대는 안전하게 자리를 지켰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낙산사는 단순한 불교문화재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숭엄한 미가 고스란히 누적되어 있다. 의상대에서 보이는 동해의 수평선에는 호연지기를 길렀던 한민족의 호방함이 살아 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로 표현되는 백성의 소박한 염원이 고이 간직된 곳이기도 하다.

  먼 후일, 우리나라가 저 찬란한 동해의 일출처럼 온 세계를 비추는 문화의 나라가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송강 정철을 중국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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