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둥글고 둥글게, 서로 섞이고 섞여서
아침부터 쨍쨍한 햇발이 머리 위를 뜨겁게 달군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다 보면 입에서는 어느새 단내가 풀풀 나고 등줄기와 이마에서는 쉴 새 없이 땀방울이 춤을 춘다. 소갈증이 절로 나서 연신 냉수를 들이키지만 물은 금세 땀으로 배출되고 만다. 후텁지근하다. 불어오는 바람도 열기를 훅훅 내뿜고 먼데 보이는 포도 위에선 작은 신기루들이 떠다닌다.
계절이 이러하니 잠자리도 입성도 모두 다 불편하다.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깔깔한 입 속이 꼭 돌가루를 씹은 것만 같다. 아침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선뜩 숟가락에 손이 가지 않는다. 여름철에 아침밥을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그러나 이 아침밥이라도 먹질 않으면 뜨거운 한 낮의 기운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래서 물에 말아 대충 한 숟가락이라도 뜰 밖에.

그런데 이런 열전의 계절에, 입맛이 나지 않는 계절에, 한국 사람의 미각을 돋워주는 요리가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쌈'이라는 것이다. 흔히 '쌈 싸먹자'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 이 요리는 단일한 품목도 아니고 특정한 음식의 이름도 아니다. 또 쌈을 싸먹을 수 있는 재료도 아주 다양하다. 연초록의 깻잎과 상추, 배추, 하얀 속살을 자랑하는 양배추, 무 등 우리가 흔히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농산물이 쌈의 재료다.
또한 이 재료들을 생으로 먹느냐 쪄서 먹느냐에 따라 그 맛도 조금씩 달라지니 쌈이야말로 한국인이 개발한 가장 한국적인 음식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쌈을 싸먹을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가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쌈장이라는 것이다. 된장과 고추장을 적절한 비율로 섞고 그 안에 깨, 참기름, 양파, 마늘, 파 등을 넣어 비빔밥처럼 심하게 비벼 대서 만드는 된장의 한 종류. 국어사전에도 없는 생활상의 합성어, 쌈장. 아마 이 쌈장처럼 한국인의 그렁성저렁성 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예전 자취생 시절의 실력을 발휘해서 쌈장을 만들어서 쌈을 싸먹기로 했다. 된장과 고추장을 2대 1의 비율로 그릇에 넣고, 그 위에 참기름 반 숟가락, 깨 반숟가락과 양파 1개를 잘라서 넣었다. 숟가락을 놀려 한참 섞은 후에 손가락으로 슬쩍 떠서 맛을 보니 어딘가 이상하다. 예전의 그 맛이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두어 가지가 빠졌다. 맞아, 마늘 간 것과 설탕을 안 넣었구나.
급히 마늘과 설탕을 찾아 집어넣고 다시 신나게 숟가락을 돌렸다. 맛을 보니 이번에는 어느 정도 예전의 그 맛과 비슷하다. 짭짤하면서도 들큼한 맛, 된장 향과 고추장 향이 버무려진 제3의 향이 코끝을 스친다. 됐다. 이제 쌈을 싸먹기만 하면 된다!

좀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자면 쌈장은 그야말로 변증법적인 음식이다. 변증법은 질이 다른 두 개의 물질(사상, 물체를 모두 포괄)이 섞여 제3의 물질을 창조하는 것을 통칭하는 철학적 사유의 한 방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된장과 고추장이라는 질을 달리하는 두 개의 물질이 섞여서 쌈장이라는 제3의 물질을 창조했으니 그야말로 철저히 변증법적인 물질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간에 첨가되는 깨나 참기름, 양파, 마늘, 설탕 등은 그 물질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며, 물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질의 질적 상태를 더 상승시켜 주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거 쌈장이라는 음식에서 이런 오묘한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게 혹시 오버한 것은 아닌가?
쌈장은 비빔밥과 더불어 한국인의 '섞어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찌 그리 섞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같이 하는' 문화, '같이 먹는' 문화에 길들여 있는지. 누가 우리를 모래알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가. 누가 우리를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민족'이라고 폄훼한단 말인가.
우리 민족은 비빔밥과 쌈장의 문화를 가진 '어울림의 민족'이다.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고, 함께 모여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함께 모여서 서로를 걱정하는 집단적인 문화를 가진 민족. 쌈장처럼 서로에게 녹아 들어가서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 제3의 창조적인 맛을 내는 민족이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정몽주는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하는 시어로써, 이방원은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는 시어로써 서로를 희롱했다. 정몽주도 타당하고, 이방원도 타당하다. 그러나 올 계절에는 이방원이 더 타당하게 느껴진다. 그저 둥글게 둥글게, 서로 서로 어울리면서, 이 쌈장처럼 세상을 살고 싶다. 남과 북도 쌈장처럼, 한국과 일본도 쌈장처럼, 북한과 미국도 쌈장처럼, 두루 두루 섞이고 섞여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추면 얼마나 좋을까?
시원한 실내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조건반사처럼 등줄기에 땀부터 밴다. 그러나 저 무더위를 뚫고 무조건 집으로 달려가야 한다. 집에 가자마자 냉장고 문을 신나게 개방한 후 상추에 밥과 쌈장을 얹고 우적우적 씹어야 한다. 그 생각을 하니 어느새 흘러나온 땀방울이 메말라 간다. 그들도 쌈장처럼 어울리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