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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모래톱의 전설이 서린 을숙도

- 갈밭새들이 날아오르던 조마이섬

을숙도. 한자로 풀이하면 새 乙자에 맑을 淑, 그리고 섬 島.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이라는 뜻이다.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하구 언저리에 고구마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을숙도에는 이름 그대로 새들이 많다. 아니 많다기보다 그저 새들의 천국이다. 50여종, 10만 마리의 철새들이 쉬어가는 을숙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철새 도래지이자, 희귀한 새들을 연중 관찰할 수 있는 갈대와 개펄의 땅이다.

지금은 낙동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하구둑으로 인해 찾아오는 철새들의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을숙도에는 각종 철새들이 해마다 무리를 지어 찾아오곤 한다. 세계적인 희귀 새인 재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이 무리를 지어 겨울을 나는 모습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어디 그뿐인가. 긴 부리에 눈부시게 하얀 깃털을 자랑하는 백로들이 붉은 노을을 등지면서 낙동강과 갈대밭 사이로 나울거리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요산 김정한 선생이 1966년에 발표한 <모래톱 이야기>의 주 무대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을숙도라는 섬이다. 이 을숙도는 낙동강이 운반해 온 토사의 퇴적에 의하여 형성된 모래섬으로써 총면적이 0.08km2 정도이며, 지난 1987년 하구언이 조성되기 까지는 자그마한 나룻배나 통통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섬이었다.

원래 을숙도에는 400여 명의 주민이 파를 비롯한 각종 채소와 땅콩을 재배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낙동강 하구언이 완공되면서 주민들 대다수가 육지로 이주하여 현재 섬에 거주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을숙도 하면, 유유히 나는 철새와 누룻한 색깔을 지닌 채 바람에 사스락거리는 갈대, 푸른 강물과 햇살에 부서지는 은빛 모래톱, 낙동강 뱃사공과 나루터를 상상하기 쉽다. 을숙도는 팔백리 낙동강이 실어온 모래로만 이뤄진 섬인데, 이곳에는 모래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또한 이 물길을 따라 사람 키를 넘는 갈대가 석양의 붉은 색깔을 받아 검노랗게 반짝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점에서, 을숙도의 상징은 머니 머니해도 갈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의 그 갈대밭이 거의 물에 잠기고 작은 흔적만 남기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을숙도에는 여전히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비록 이전의 그 무성한 갈대밭은 아닐지라도 멀리서 찾아오는 객들에게 을숙도의 예스런 풍광을 전해주는 데는 별반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을숙도의 갈대밭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킨 오브제이기도 했다. 많은 화가와 시인, 소설가, 그리고 영화감독들이 을숙도를 배경으로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모래톱 이야기'라는 소설이다. 근 20년간 절필하신 요산선생께서 다시 세상에 내 놓으신 작품이 '모래톱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는 을숙도의 풍광이 다음과 같이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길가 수렁과 축축한 둑에는 빈틈없이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쑥쑥 보기 좋게 순과 잎을 뽑아 올리는 갈대청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하늘과 땅과 계절의 혜택을 흐뭇이 받고 있는 듯, 한결 싱싱해 보였다.’
‘낙동강 하류의 삼각주 일대가 대개 그러하듯이, 이 조마이섬이란 데도 ...... 부락을 이루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집 두 집 뛰엄뛰엄 땅을 몰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침 저녁 그 속에서 갈밭새들이 한결 신나게 따그르르 따그르르 지저귀어 대면 멀잖아 갈목도 빠져 나온다.’




무엇보다도 을숙도는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받은 곳이기도 하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무사로 분장한 전지현이 무성한 갈대밭에서 현란한 칼싸움을 하는 장면이 촬영되었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같은 경우에는 을숙도의 폐공장에서 화려한 액션 신이 촬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70년대에는 윤시내가 불러 히트한 '열애'라는 노래를 영화화 한 작품(주연 김추련)이 촬영되기도 했다.

행정구역상 을숙도는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에 속하는데,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지금의 사하구 전체를 통칭해서 ‘하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낙동강 하구언이 들어서기 전 까지만 해도 지금의 ‘가락타운’ 일대는 넓디넓은 모래밭이자 개펄이었다. 하구언 공사를 하면서 이곳도 매립되고 말았는데, 예전 이곳은 을숙도로 가는 나룻배나 통통선을 타던 곳이었다. 이문열의 연작 소설, '젊은 날의 초상-하구'에 보면 강진이란 지명이 등장하는데, 이 강진이란 곳은 하단지역을 말하며 그중에서도 을숙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가락타운 근방의 모래밭 주변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1966년 을숙도는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들 무슨 소용이리. 이 땅은 미래의 후손들에게서 우리가 잠시 빌린 것이거늘, 지금 우리가 조금 잘 살자고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파괴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지금도 을숙도는 각종 개발이다 건설이다 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자연 순화의 원칙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담수를 확보하기 위해 하구언을 설치하다보니 강물이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썩고 있다. 개발과 환경 보존. 참 어려운 문제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선 일정한 개발이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결국 관건은 얼마나 환경친화적으로 개발을 하는 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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