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내륙을 찾아서
부산을 생각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구 도시라는 것이다. 국내 1위의 항구인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어딜 가나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해풍이 살랑거린다. 자갈이 깔린 곳이었다는 의미를 가진 “자갈치”시장은 수산물 유통 시장으로써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국내 수출 물량의 70%가 부산항을 통해 나갈 정도이니 물류, 항만의 기능으로선 전국 최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부산에도 내륙의 향이 아스라이 번지는 곳이 있다. 그곳은 향나무와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그리고 한적한 호수가 어우러져 있으며, 잉어회와 붕어회를 맛볼 수 있는, 부산 8경의 하나라는 오륜대라는 곳이다.

국내 아무 도시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그 도시의 이름을 딴 8경이란 용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속초 8경, 부산 8경, 단양 8경, 관동 8경, 대한 8경 등등. 대개의 경우 이런 용어들은 지방자치단체가 관광홍보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정한 것들이다. 부산 8경이란 용어도 이와 비슷한 의도에서 탄생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부산에서는 예전부터 풍광이 빼어난 곳을 五臺라고 부르며 그 주변의 경치를 즐긴것만은 사실이다. 이른바 해운대, 몰운대, 태종대, 오륜대, 신선대가 그것인데 이 중에서 오륜대만이 바다와 전혀 상관없는 내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바다와 관계없이 뛰어난 경치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오륜대에 있다는 이야기다.
경부고속도로 부산 종점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하면, 태광산업 공장이 보이고 그 공장 옆으로 2차선 골목이 나온다. 이 골목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선동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이정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부산의 오대 중 하나인 오륜대를 만날 수 있다. 오륜대엔 선동과 회동동, 오륜동 등 5개동에 걸쳐 영롱한 빛을 발하는 회동수원지의 아름다운 경치가 군데군데 서려있다.
산과 새, 바위의 조화로 병풍을 이룬 듯, 사방 천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는 예로부터 봉황과 백구가 날아올랐으며 시인 묵객의 청아한 음성이 산중호수의 맑은 물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이제 그 시인묵객은 간 곳 없고, 미나리 밭과 동백꽃의 무리, 목련과 벚꽃이 만발한 한적한 마을엔 흘러간 옛 정취가 고요한 호수위에 출렁일 뿐이다.

『동래부지(1740)』고적조에는, "오륜대(五倫臺)는 동래부에서 동쪽자리 사천에 있고 대에서 4,5보 가량으로 맑은 시냇물에 접하고 암석이 기이하며 아름답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 부근에 사는 사람이 오륜을 갖추었기에 이를 기려 이름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 빼어난 내륙의 아름다운 풍광은 1946년 수원지가 만들어지면서 물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고, 이제는 수원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둘레 20여km의 호수가 만들어낸 이 새로운 풍경은 오륜대의 기에 눌렸는지, 그 어디에서도 인공호수라는 느낌은 없다. 오륜대의 훌륭한 풍경에 부드럽게 녹아들어가 예전부터 늘 그랬던 풍경이라고 사람들이 믿을 정도이니 말이다.

오륜대엔 또한 옛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971년이던가? 호수는 극심한 가뭄으로 자신의 몸 깊숙한 바닥을 드러냈으며 그 바닥 한가운데에서 오륜고분군이 발견되어 석실묘, 옹관묘, 철제품 등 귀중한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오륜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인지 천주교회는 오륜대한국순교자기념관을 근처에 세워 놓았다. 기념관은 흥선대원군의 병인박해 때 수영에서 참형당한 8인의 순교자를 모신 곳으로써 1층의 기념관에는 수영장대벌의 주춧돌과 순교자들을 고문하던 곤장, 태, 칼 등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륜대를 나서면서 잠깐 눈 들어 호수를 바라보니,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어서 저어오오의 속삭임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홍소 속에 곱다랗게 배어있었다. 오륜대는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에게 만발한 꽃무리처럼 다가오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