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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기호의 진실, 덧없는 기호의 진실을 위한 변주곡

- 서평, 고급 추리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고>

소설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아주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는, 특이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수준 높은 추리소설이다. 보통의 상식으로 추리소설이라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특정한 인물이 사건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과 여타의 조건을 의미 있게 해석하여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사건은 범죄이기도 하며, 난해한 퍼즐 혹은 치밀한 논리게임이기도 하다. 장미의 이름은 일견 살인사건을 다룬 전형적인 범죄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나 그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이 중세 유럽이며, 그 장소 또한 신성한 수도원이라는데 자못 범상한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이다.

300명의 수도사들이 경건한 신심을 닦는 수도원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하나의 죽음이 발생한다. 아델모라는 젊은 수도사가 거대한 탑루 절벽 밑에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소설의 서두는 시작된다. 현학적이며 냉철한 지성과 판단력을 지닌 윌리엄 수도사, 그리고 순백한 감성의 소유자이면서 지적인 호기심에 충만한 어린 제자 아드소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차분한 발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주는 흥미는 종교소설이라는데 있다. 기독교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소 난해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당시 중세 유럽의 암흑기를 생생한 필치로 그려낸 움베르토 에코 교수의 탁월한 분석력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교황청 사절단과 황제측 사절단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대립의 한 가운데에서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는 이방인의 위치에서 멀거니 바라보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이 대립의 와중에서 이단과 정통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각각의 사건들은 수도원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죽음들을 묵시론적으로 암시하는 단서들이다.

특히 아드소가 예배 중에, 꿈속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보게 되는 무수한 환영과 상상들은 다양한 형태의 상징과 기호들이다. 그 메타포와 심볼리즘의 와중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점차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소설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는 기호와 상징의 시스템에 있다. 에코교수는 전문적인 추리소설작가가 아닌 기호학자인데, 그의 기호학에 대한 지식과 명성은 소설 곳곳에서 충분히 드러나 있다. 수도원의 연쇄 죽음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상징과 기호들에 의해 예견된다는 윌리엄의 추리, 나팔소리에 맞추어 발생하는 살인들, 그러나 이 상징들과 죽음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대목은 상당한 혼란과 복잡함을 안겨준다.

에코교수는 이 소설을 통해 중세 유럽의 경직된 교조주의와 흑백논리, 이로 인한 기독교 문명의 폐해, 이단과 정통의 상대적인 분리와 결합에 대해 극명한 필치로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낯설음과 어색함을 주기 마련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류의 추리 소설과는 그 맥이 완연히 다른, 어찌 보면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그 격이 너무 높은, 철학적인 주제와 살인 사건을 동일한 지평선상에서 다룬다는 게 얼마나 부조화한가? 그러나 이 부조화를 조화롭게 만들었다는데 이 소설의 매력과 묘미가 있다.

라틴어의 해석을 둘러싼 문자 퍼즐 게임, 이 문자 퍼즐과 거대한 장서관 밀실들 간의 관계, 피니스 아프리카에(아프리카의 끝)라는 밀실에 감춰진 서책의 행방, 이 서책과 살인사건과의 질긴 인연, 사건의 와중에서 방황하는 나이 어린 수도사의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마침내 아드소의 엉뚱한 문자풀이로 실마리를 얻게 되는 윌리엄 수도사, 장엄한 수도원의 화재 등등.

사건의 말미에 이를수록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은 그 도를 더해간다. 한마디로 장미의 이름은 법열에 버금가는 지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 범죄소설 중심의 추리 소설과는 그 격을 완전히 달리하는 지적 오만에 빠지게 하는 추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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