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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부산의 인사동, 망미동 골동품 거리

송강 정철은 우리나라 고전 시문학의 대가이자, 불세출의 명 문장가였다. 그의 문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김만중이 서포만필에서 정철의 가사인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을 굴원의 <이소>에 비겨 극찬할 정도였을까. 그만큼 정철 선생의 작품은 민족 문학의 보고이다. 관동별곡에서 내.외 해금강과 관동팔경을 묘사한 언어의 속살은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지었는지 경탄하고 또 경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철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다. 오로지 군왕과 왕실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하여 군주제와 유교적인 이데올로기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런 사고는 사미인곡이나 속미인곡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여인이 남자를 연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며, 이는 송강 자신이 임금을 연모하는 마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들의 제목에 있는 <美>는 모두 임금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부산에 가면 이런 의미를 가진 동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망미동>이란 곳이다. 바랄 望자에 아름다울 美자를 쓰는데, 결국 임금을 그리워하는 동네란 뜻이다. 이 망미동에 얽힌 사연이 송강 정철의 사연과 유사하다. 그런데 시대는 훨씬 앞서서 고려시대 의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의종 때 인종의 총애를 받던 정서는 의종이 즉위하자 동래지방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당시 정서는 의종의 부름을 기다리며 수영강(당시 수영지역은 동래지역에 속했음)삼각주 근처 모래밭에 정자를 지어놓고, 이 정자에서 거문고를 타며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그 노래가 바로 정과정곡이란 시가인데, 이 시가는 후일 송강 정철의 가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한다.

정서는 수영강 삼각주 가까이에 있는 산에 자주 올라가서 임금이 계시는 북녘을 자주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 산을 ‘망산’이라고 했고, 이 망산에 임금을 상징하는 미자를 함께 써서 <망미>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은 이런 지명유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망미동>에는 서울의 인사동거리와 비슷한 골동품 가게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어,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나 서울의 인사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문화의 볼모지인 부산에 이런 거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약 20년 전부터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한 이들 골동품 가게는 현재 약 10군데 정도가 망미동에서 연산동으로 넘어가는 거리에 다문다문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 망미동 골동품 거리는 ‘고가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가구와 더불어 일반 골동품도 함께 취급하고 있다.

골동의 사전적 의미는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 있는 고미술품 또는 기물’이란 말이다. 그런데 골동이란 말의 원래 의미가 참 재미있다. 옛날 중국에서 뼈를 오랫동안 고아 만든 국을 골동이라고 했는데, 두고두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더해진다는 뜻에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식으로 말하자면 소뼈를 푹 고아서 먹는 ‘곰국’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실학파 문인들을 중심으로 골동품을 수집하는 풍조가 생겼다고 한다.




만일 옛것을 보고 싶다는 강한 정서적 충동이 생기면 무작정 이 망미동 거리의 골동품 가게를 찾아가보라. 도자기와 민속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도 있고, 서화와 묵화, 동양화 등 화선지에 쓰여 진 각종 서예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또 어떤 가게는 오래된 축음기나 재봉틀, 라디오, 수동식 타자기 등을 진열한 곳도 있다. 골동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흥분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 주는 마음의 양식이다.

때론 상점 안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보다는 가게 밖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골동품에서 소박한 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것들은 비가 눈이 오나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맷돌 종류나 절구, 혹은 석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주로 투박하고 거친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예술적 가치는 별로 없다. 그러나 무지렁이 백성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정겹고 푸근한 느낌을 안겨준다. 청자상감문병이니, 조선백자니, 나전칠기와 같은 고급 골동품과는 다른 순수한 아름다움을 이들 골동품에서는 느낄 수 있다.

외지에서 부산을 찾아오면 별로 볼 곳이 없는 게 사실인데, 이 망미동 골동품 거리를 특화시켜 문화의 거리로 만든다면 참 유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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