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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부산 남포동 먹자골목의 추억


  우리네 먹을거리 문화를 나타내는 말 중에 '먹자골목'이라는 무척 정감이 가는 말이 하나 있다. 이 말은 언뜻 보면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한 단어가 된 것처럼 보인다. 즉 '먹자'와 '골목'이란 말이 합쳐져서 생긴 것처럼 보이는데, '먹자'라는 말은 동사 '먹다'의 청유형에 해당된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먹을 게 많은 골목, 혹은 그 골목에 가서 뭘 좀 먹자’ 뭐 그런 의미이다.

  그런데 듣기에 따라 우습기도 하고 왠지 군침이 돌게 하는 이 말이, 국어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어 있으니 작은 감탄이 절로 난다. 아마도 이 말은 우리네 생활에서 널리 쓰이게 된 말을 채용한다는 원칙에 의해 국어사전에 기재된 듯싶다. 그만큼 이 '먹자골목'이란 단어는 우리 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맛나고 향긋한 냄새가 풀풀 나는 먹자골목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사전에서 '먹자골목'을 찾아보면 "많은 음식점이 몰려 있는 번화가의 뒷골목"이라고 되어 있다. 참 적절한 설명인데, 이 설명에 아주 충실한 먹자골목이 부산에도 있다. 그게 바로 남포동 극장가 뒷골목에 있는 '세명약국 먹자골목'이다.
이곳에 형성된 먹자골목은 6.25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란이 터진 후 수많은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을 상대로 근처에 살던 가난한 아낙네들이 간단한 노점을 차려 먹을거리를 팔았는데, 그 노점들이 굳어져서 먹자골목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먹자골목은 피난살이와 전쟁에 지친 고된 삶을 서로 위로하는 소중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현재 먹자골목에는 약 40여개소의 노점에서 충무김밥과 순대, 잡채, 국수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이 먹자골목은 집에서 먹을 수 없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형이나 누나는 그들의 월급날이 되면 여동생과 나를 남포동으로 데려가서 영화를 보여 주었고, 영화가 끝나면 이 먹자골목으로 데려와 먹을거리를 사주곤 했었다.

  그때 먹었던 당면과 충무김밥이 얼마나 맛있었으면, 어린 나와 여동생은 형과 누나의 월급날이 매일 왔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귀엽게 말린 김밥과 반찬으로 나온 오징어의 맛이 어찌 그리도 달콤했던지.

  


  지금도 필자는 남포동에 갈 일이 있으면 이 먹자골목을 꼭 둘러본다. 점심시간이면 일부러 그곳에 가서 충무김밥이나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먹는 점심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PIFF광장을 지나 큰 길을 가로 지르면 이 먹자골목이 바로 나타난다. 좁은 골목의 한 가운데로 줄지어 늘어선 노점들에는 선남선녀들이 작은 의자에 둘러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인다. 그들 앞에는 충무김밥과 순대, 당면들이 가득 쌓여 있고, 넉넉한 품새를 지닌 할머니들이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그 넉넉한 여유가 보기 좋아, 한쪽 모서리에 위치한 선한 얼굴의 할머니 앞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에게 충무김밥을 주문하니, 할머니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접시에 충무김밥과 반찬을 넉넉히 얹어 플라스틱 컵과 함께 건네주셨다. 김밥에는 이쑤시개가 두 개 박혀 있고, 플라스틱 컵에는 따뜻한 육수가 담겨 있다. 충무김밥을 하나 찍어 입 안으로 집어넣으니 김밥의 심심한 맛이 느껴졌다. 곧 이어 양념된 오징어를 먹으니 김밥의 심심함은 곧 사라지고 알맞게 배합된 맛이 혀끝으로 묻어났다.

  


  그런데 할머니 옆에는 순대를 파는 젊은 아줌마가 앉아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의 딸이었다. 할머니에게 몇 년 하셨냐고 물어보니 35년 되었다고 하시며 너털웃음을 터트리신다. 그러면서 조금 떨어진 노점을 가리키며 은근한 목소리로 둘째딸이라고 하신다.

  허허, 얼마나 자리가 좋았으면 당신의 딸들을 다 불러들였을까? 하긴 어쩌면 이 할머니는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려 35년의 세월을 한 군데에서 굳건히 장사하셨으니 어느 누가 감히 그 자리를 넘볼 수 있겠는가? 그저 그 오랜 경륜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남포동에는 이 먹자골목 외에도, 충무육교 근처 족발골목과 부평동 시장 근처 통닭골목도 있어 어디를 가나 풍성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전통과 추억의 명가인 이 먹자골목만한 곳이 없다. 그저 오래도록 이 먹자골목이 살아남아 서민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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